휠레 소잉카
《21세기 세계문학 담론의 첫장을 서울에서 여는 ‘2000 서울 국제문학포럼’이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26∼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경계를 넘어 글쓰기―다문화 세계 속에서의 문학’을 주제로 열리는 포럼에는 세계의 저명 문인과 석학 19명이 참가, 국내인사들과 토론한다. 26일 포럼을 갖는 1986년 노벨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나이지리아)를 시작으로 주요 해외참석자들의 발제문을 요약해 소개한다. 》
문학에 있어서 정전(正典·Canon)이란 무엇인가. ‘권위를 부여받아 신성시되는 명작’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텍스트의 신성화와 권위에 반대하므로, 오히려 권위주의와 검열이 만들어놓은 정전의 목록에 반해 자신을 지키는 ‘창조적 지성의 투쟁’을 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전에 관해 논하는 사람들은 주로 유럽 문학전통의 문학작품에 이를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다. 어떤 텍스트로 문학 교육의 저변을 형성해야 할 것에 대한 논쟁이 서양 인문학계에서 종종 이루어지는데, 나는 이런 논쟁이 문학과는 무관하다고 믿는다. 정전을 설정하는 것은 다른 텍스트를 배제하는 ‘배제의 정전’을 낳기 마련이며, 이 배제는 종종 다른 문화권을 겨냥한다. 유럽 문화에서 나온 어떤 특정 텍스트만을 전거(典據)로 삼아 신성시한다면 아프리카 ‘순디아타의 서사시’, 인도의 ‘우파니샤드’ 등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된다는 말인가?
지리적인 지식과 관심이 문학적 리얼리즘을 강화하며 일깨운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내 경우에는 어린 시절 접한 셰익스피어 작품집, 런던에서 온 우편 상품주문 목록, 성서, 점술사의 주문 등 수많은 이미지들이 서로 뒤섞이고 있었다. 나는 문학적 체험이란 ‘이국적인 세계로 들어가거나 이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현실의 세계와 정령의 세계가 상호 침투할 때 우리는 삶에 대해 더 강렬하게 의식하게 된다. 이런 ‘두 세계의 감응’을 오늘날 서구사회는 결여하고 있다.
한편 ‘문학의 자율성’을 신성 모독처럼 간주하는 집단이 있다. 스탈린 시절 동구권이 그랬고 60 ,70년대 미국 흑인작가들도 그랬다. 이들은 자율적 영역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백인 예술의 하수인 또는 나약한 탐미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이들의 공격은 대부분 ‘유럽의 정전’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대는 진정한 상상력에 바탕한 문학을 위태롭게 만들곤 한다. 나는 사회 정신을 교화하고 변화시키는 일을 문학이나 인문학의 어깨에 지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인문학을 훼손시키는 일이 있어서도 안된다. 문학과 인문학에는 ‘타자’를 악마시하려는 경향, 즉 외국인 배척증과 같은 경향에 대항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두 세계의 감응’으로 돌아가자. 에즈라 파운드 등 영미 이미지스트들은 일본의 시작(詩作)법을 끌어들여 혁신적인 예술을 창안했다. 브라크 비카소 등의 미술도 아프리카의 조각예술에서 중요한 영감을 가져왔다. 현대 문화계는 친숙한 것과 결별하고 폐쇄성을 포기하는데서 위대한 예술을 낳았던 것이다.
우리는 고립주의 또는 타자와의 창조적 대화 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문학의 여신이 갖는 자율적 영역은 모든 경계와 문화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문학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용되는 가장 친숙한 운송수단인 것이다.
gustav@donga.com
◇소잉카는 누구인가?
1934년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 출생. 영국 리즈대에서 수학했고 극작가로 출발해 영국왕실극장에서 활동했다. 1960년 극단 ‘마스크스’를 창단했고 1967년에는 내전으로 투옥되었으나 1970년 정권교체 후 영국으로 망명해 1973년 리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귀국했고 1986년 ‘늪지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94년 군사정부에 반대, 다시 나이지리아를 떠나 현재 미국 에모리대 교수. 대표작은 ‘기억의 짐’ ‘용서의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