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모든 아줌마는 강하다’
25일 밤 시드니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 여자 5000m 결승 성적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올만하다. 시상대에 오른 3명의 메달리스트가 모두 ‘아줌마’.
14분40초70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한 가브리엘라 스자보(24·루마니아). 지난해 10월 16년 연상의 코치와 결혼, 화제를 뿌렸다. 96애틀랜타올림픽 1500m에서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한바퀴를 돌다 다른 선수와 충돌, 은메달에 그친 비운의 스타. 하지만 결혼 1년 만에 4년 전 아픔을 말끔히 털어냈다.
스자보와 막판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다 0.23초 뒤져 은메달을 따낸 소니아 오설리반(30) 역시 딸 하나를 둔 아줌마. 뒷심부족으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기는 했어도 자국 신기록을 세워 일약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일랜드 사상 첫 육상 여자 메달리스트. 아일랜드 대통령으로부터 “그녀 자신은 물론이고 아일랜드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찬사까지 들었다.
3위에 오르며 에티오피아에 시드니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케테 바미(26)도 지난해 11월 화촉을 밝힌 미시 아줌마. 변변한 교통수단이 없는 에티오피아에서 통학을 위해 뛰어다닌 그는 육상선수로 변신해 정상급 육상 스타로 발돋움했다.
‘아줌마 파워’는 지구력이 요구되는 장거리 종목에서 두드러지는 추세이며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결혼에 따른 심리적 안정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js0123@donga.com
사이클金 지엘라르트 '인간승리 드라마'
‘로테르담 아줌마’가 마침내 세계 사이클을 석권했다.
레온티엔 지엘라르트(30·네덜란드). 그녀는 26일 도로경기 여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남편이자 코치인 미하엘 지엘라르트를 얼싸안고 기쁨에 펄쩍 펄쩍 뛰었다.
18일 3000m 개인추발에 이어 2관왕이 된 사이클 오렌지 물결의 주역 지엘라르트는 불굴의 투지로 병마를 이겨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
지엘라르트는 92년과 93년 연속 사이클 최고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여성부 패권을 차지하며 사이클계 1인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93년부터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거식증에 걸려 69㎏이 나가던 그의 체중이 48㎏까지 빠졌다. 마라톤에 버금가는 체력이 필요한 사이클 장거리선수로선 ‘사형선고’를 받은 것.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잘나가던 사이클 선수였던 미하헬 지엘라르트는 94년 레온티온과 결혼,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능력있는 아내를 개인코치로 돌보기 시작했다.
심리치료 상대역은 물론 남자선수들이 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함께 하며 아내의 근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마담 지엘라르트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 도로경기와 속도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날 시드니교외 센텐나리공원 둘레인 119.7㎞를 7바퀴도는 경주. 죽을 힘을 다해 달리던 지엘라르트가 스퍼트한 곳은 결승점을 불과 400m 앞둔 지점.
지엘라르트는 이 때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선두에 섰던 호주의 애나 윌슨을 제친다음 결승점 200m를 앞두고 네델란드 동료들의 방해작전에 힘입어 라이벌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단독 질주,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나를 믿어준 남편 미하엘에게 감사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jeon@donga.com
프리먼 열풍 호주대륙 강타
‘프리먼 열풍’이 호주대륙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 대회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수영 3관왕 이언 소프의 인기는 이제 프리먼과 비교할 수도 없다.
프리먼이 우승한 육상 여자 400m 결선 경기는 11만여명이 현장에서 지켜봤고 TV로 이를 본 호주 국민이 900만명으로 추산될 만큼 호주 국민의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 26일 발매된 ‘프리먼 기념우표’는 무려 3시간 이상 줄을 서야 살 수 있을 정도다.
프리먼 열풍은 특히 백인들에게 차별을 받아온 소수민족 이민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개막식 당시 ‘기라성같은 금메달리스트를 제치고 은메달리스트에게 성화 점화를 맡기느냐’며 시비를 걸었던 호주 언론들도 일제히 프리먼에 대한 찬사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다 애보리진(원주민) 깃발을 들고 뛴 데 대해 반감을 드러냈던 호주 정부도 태도가 변했다. 하워드 호주 총리는 “애보리진 깃발을 들고 나온 데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다”며 “프리먼은 애보리진의 영웅이 아닌 호주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프리먼 신드롬’이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제로 인종간의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
시드니 도심 술집이나 거리에서 툭하면 벌어지던 백인과 흑인, 애보리진과의 크고 작은 다툼이 프리먼이 금메달을 획득한 25일 밤에는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제 프리먼은 박해받던 애보리진의 인권옹호운동가에서 전 세계 인종간 갈등을 해소하는 ‘평화의 전도사’로 승화되고 있는 셈이다.
올림픽 온 로열 패밀리 "눈에 띄네"
‘올림피언은 모두가 하나’.
평소 보통사람들은 접근하기 조차 힘든 왕족이라고 할지라도 선수로 출전한 올림픽에서는 경쟁자와 몸을 맞대고 땀을 흘려야 하고 임원들은 승패에 울고 웃는다.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및 임원 가운데 세계 각국의 왕족과 귀족 등 이른바 ‘로열 패밀리’가 눈길을 끌고 있다.
브루나이의 제프리 볼키아 압둘―하킴왕자와 아랍에미리트의 세이크 사이드 알―막토움 왕자는 사격 남자스키트에 출전했다.
비록 이들은 입상에 실패했지만 TV를 통해 경기를 시청하던 국민들에게 왕족의 ‘지엄함’ 대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운동선수로서의 소박한 이미지를 심어 놓는데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 크리스티나 공주의 남편 이나키 울단가린은 공주의 애타는 응원속에서 스페인핸드볼팀의 주장으로 맹활약 중.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크리스티나 공주를 처음 만난 울단가린은 결혼에 골인한 뒤 공작의 직위를 받아 자국 남성들의 부러움을 산 소설속의 주인공같은 케이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영국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인 앤 공주는 임원 자격으로 시드니에 와 있고 통가의 타우파아하우 국왕은 국정을 잠시 뒤로한 채 왕비와 왕자들을 데리고 시드니올림픽 현장을 유유히 거니며 경기를 참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