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27·삼성생명)이 레슬링에서 은메달을 따냈다.김인섭은 은메달에 그쳤으나 26일 옆구리 부상을 당해 진통제를 맞고 출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따낸 것이어서 금메달 보다 값진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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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9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김인섭은 27일 오후 달링하버 전시홀에서 열린 그레코로만형 58㎏급 결승전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3위에 올랐던 불가리아의 아르멘 나자리안에 폴로 패했다.
김인섭은 경기시작 28초만에 목 감아돌리기를 성공시켜 3득점,쉽게 경기를 풀어나갔다.그러나 김인섭은 1분54초 파테르를 허용,6점과 3점을 계속 빼앗겨 결국 폴을 당했다.
김인섭은 이에앞서 준결승전에서 초반 득점한 뒤 후반에 수비하는 작전이 주효,셍 제티안(중국)을 4-0으로 물리쳤다.
예선 두 번째경기에서 늑골을 다쳤던 김인섭은 전날에 이어 이날 아침에도 진통주사를 맞고 경기하는 투혼을 발휘, 8강전과 준결승전을 가볍게 통과했다.
알리 아시카니(이란)와의 8강전에서는 경기시작 10초께 1실점했으나 1분20초께 허리를 잡고 뒤로 던지는 기술을 성공시킨 데 힘입어 3-1로 승리했다.
준준결승전에서는 김인섭은 2분께까지 4점을 먼저 딴 뒤 나머지 4분은 상대의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 리드를 지켜냈다.
먼저 1분 38초께 들어던지기하려는 순간 상대 반칙으로 2점을 딴 김인섭은 공격의 고삐를 더 세게 조여 2분4초께 옆굴리기로 2점을 보탰다.
그러나 69㎏급에서 금메달까지 내다봤던 손상필(주택공사)은 8강전에서 96년애틀랜타올림픽 74㎏급 챔피언인 필리베르토 아즈쿠이(쿠바)에게 2-9로 패했다.
이날 은메달을 따낸 김인섭은 최근 3년간 패배를 몰랐던 불패신화의 주인공.
9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시작된 김인섭의 신화는 41연승까지 줄달음쳐 이번 올림픽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임을 이미 예고했다.
김인섭은 유도에서 레슬링으로 전환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하도 몸이 약해서대구초등 5학년때부터 특별활동을 이용, 유도를 했고 계성중을 졸업하고 경북체고에 입학할 때까지도 김인섭은 유도선수였다. 그러나 몸무게가 문제였다.
50㎏도 나가지 않는 몸무게때문에 최경량급인 55㎏급에도 통할 수 없게 되자 유도감독이 레슬링으로의 전환을 권유했다.
레슬링은 최경량급이 44㎏급이었던데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김인섭이 빛을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안타까워한 것.
김인섭도 유도감독의 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여 레슬링에 매달렸다. 그리고 불과
3년 뒤인 경성대 1학년때 김인섭은 국가대표 후보선수로 뽑힐 정도로 기량이 일취월장했고 96년부터는 국가대표 붙박이로 활약하고 있다.
9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불패신화를 이어가면서 그해 방콕아시안게임, 이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잇따라 정상에 올랐다.
대구 경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성(53)씨와 최위선(47)씨 사이의 2남중 첫째. 동생 정섭(25)도 형을 따라 레슬링을 하고 있다.
박해식/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