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청소년층에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내용의 영화를 선전해 온 할리우드 영화제작사들의 '빗나간 상술(商術)'이 도마위에 올랐다.
미 상원 상무위원회(위원장 존 매케인)는 27일 월트디즈니, 드림워크스, 패러마운트 픽쳐스,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 유니버셜 스투디오, 워너 브라더즈, 20세기 폭스사 등 8개 영화제작사 대표들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시켜 할리우드의 잘못된 판촉 관행을 엄하게 따졌다.
의원들은 할리우드영화사들이 17세 이하는 부모가 없이는 볼 수 없는 R 등급 영화의 판촉을 위해 심지어 9세 정도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시사회나 설문조사 등의 마케팅 행사를 벌여온 사실을 추궁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미국 영화의 등급은 영화사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것으로 이중 R 등급은 청소년층에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일반적으로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로 분류된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날 미국 연방교역위원회(FTC)의 보고서를 인용, 96년부터 99년까지 제작된 44편의 R 등급 영화 중 33편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시사회 등을 열어 이들의 반응을 토대로 판촉 활동을 벌여온 사실을 1면 톱 기사로 폭로했다.
이에 따르면 잔혹한 살인장면 등을 담고 있는 '나는 지난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의 경우 12∼24세의 관객 500명을 상대로 영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면서 이중 100명을 9∼11세의 어린이들로 채웠다.
미 영화사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나이 성별 인종 별로 분석, 정확한 마케팅 대상과 방법을 설정하기 위해 영화 상영 몇 개월 전부터 시사회 등의 행사를 갖는 게 보통.
이날 상원 청문회에서 케이 베일리 허치슨 의원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미성년자에게 해온 부당한 판촉 활동을 시정하지 않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의 앨 고어 대통령후보와 조셉 리버맨 부통령 후보는 "할리우드가 앞으로 6개월 내에 어린이와 청소년층을 겨냥한 마케팅을 시정하지 않으면 FTC가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의 비판으로 궁지에 몰린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앞으론 17세 이하는 시사회 등 판촉 행사에 포함시키지 않고, 어린이 관람 영화를 상영할 때 성인용 폭력물을 예고편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 의회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더욱 강도높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워싱턴과 할리우드 사이에 흐르는 싸늘한 기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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