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자와 루이 vs 아사바 히데아끼
일본 만화에는 유난히 미소년이 많이 나온다. '꽃미남'이라고도 하는 이 미소년 캐릭터들은 근육질의 호남형이나 사나이다움과는 차별되는 미모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면 꽃미남의 요건은 무얼까? 훤칠한 키, 호리호리한 몸매, 달갈형의 얼굴, 부드러운 머리결, 긴 속눈썹, 오똑한 코. 대충 이런 것들이다. 아마 어른들이 보시기엔 '기생 오라비' 쯤 될 것이다.
학원 순정물에는 특히 이런 꽃미남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그 중에서 와 가 눈길을 끈다. 앞의 책은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선 서울문화사에서 26권까지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는 카미오 요코의 인기작이다. 반면 뒤의 만화는 의 안노 히데아끼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국내에선 학산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8권까지 출판된 츠다 마사미의 작품이다.
두 만화에는 조연급 꽃미남이 나오는데 이들은 주인공 못지 않은 매력과 개성을 보여준다. 먼저 의 루이. 제목 그대로 꽃보다 예쁜 남자들이 수두룩한 이 만화에서 루이는 남자 주인공 츠카사가 이끄는 미소년 4인방 'F4'(꽃의 4인조라는 뜻)의 한 멤버다. 이들 F4는 부자들만 다니는 사립 명문고 에토쿠 학원을 주름잡는 귀공자들이다.
여학생 츠쿠시가 대담하게 이들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만화에서 루이는 F4에게 집단 이지메를 당하는 츠쿠시를 도와주게 된다. 그런 루이를 츠쿠시가 짝사랑하지만 루이에겐 이미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츠쿠시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던 츠카사는 어느새 츠쿠시에게 서툰 애정공세를 보내게 되고, 이들 셋은 묘한 3각관계에 놓이게 된다.
다소 황당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지닌 에 비해 훨씬 통찰력과 설득력을 갖춘 에는 아사바 히데아끼라는 꽃미남이 등장한다. 공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의 성장기와 연애담을 담은 이 만화에서 아사바는 주인공들 사이에 끼어 들어 둘을 떼어 놓으려는 훼방꾼으로 등장한다.
어렸을 적부터 칭찬받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둔 허영 덩어리 여학생 유키노와 모든 면에서 그녀를 훨씬 앞서는 남학생 아리마의 연애전선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우선 둘의 외모부터 비교해보자. 에서 츠쿠시가 복도에서 루이를 처음 마주친 후 튀어나온 탄성은 "유리알 같은 눈동자!". 181cm의 장신인 루이는 160cm를 겨우 넘는 츠쿠시보다도 얼굴이 작고 조각처럼 잘 생겼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자기가 얼마나 잘 생긴 줄 모른다.
작가 카미오 요코는 그런 루이를 면보다는 가는 선을 위주로 하는 간결한 그림체로 묘사한다. 프랑스 파리에 다녀 온 뒤 머리를 기른 루이의 극중 모습에 반해 필자는 만화책을 미장원에 들고 가 "이렇게 해 주세요"라고 주문했을 정도.
루이는 재벌집 아들 답게 고급 브랜드만 입는데 작가는 부잣집 도련님들의 사치스런 패션감각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남자 패션잡지들을 탐독했다고 한다. 특히 학교의 비상계단에서 멋진 옷을 걸친 루이가 그 긴 팔다리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포즈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다!
학생이 교내에서 무슨 사복이냐고? 천만의 말씀. F4는 집안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어 매사에 교칙 정도는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교사들도 어쩌지 못하는 파워집단이다.
의 아사바는 주인공 아리마와 더불어 학교의 2대 미남. 그러나 항상 단정한 차림의 모범생 아리마와는 다르다. 노랗게 염색한 긴 머리, 선탠으로 그을은 피부, 각종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하는 날라리과다.
그의 미모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같은 반 학생들이 학교 행사에서 '아사바 디너쇼'를 기획하고 아사바 캐릭터 상품을 만들게 할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빽'과 돈을 겸비한 루이와는 달리 아사바는 학교에서는 교복, 학교 밖에서는 평범한 캐주얼을 즐긴다. 작가 츠다 마사미의 그림체 역시 가는 선 위주로 아사바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둘은 외모 못지 않게 성격도 대조적이다. 재벌그룹의 외동아들인 루이는 혹독한 후계자 교육을 받는 바람에 어려선 자폐증에 걸리기도 했다. F4들과 유흥가로 놀러 다니는 대신 일찍 귀가해 잠자기를 즐기는, 매사에 무관심하고 접근이 어려운 존재다.
깡패 못지 않게 과격하고 학생들에게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 폭력을 행사하는 주인공 츠카사와 어떻게 친구가 됐을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래서 루이는 표정이 풍부한 츠카사와는 달리 표정이 일그러지거나, 당황해서 얼굴이 온통 빗금칠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반면 "여성은 모두 아름다워!"를 외치는 아사바는 자신이 잘 생겼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는 자신의 인기를 즐기는데 좀 더 많은 소녀들 사이에 둘러 싸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왕자병과 스타성을 겸비한 캐릭터. 평소 자신의 소녀팬들을 '어린 양'이라고 표현하는 아사바는 그 소녀들을 한데 모아 '아사바 메리랜드'(어린 양 왕국)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루이가 어린 시절 자폐증을 앓았다면 아사바는 지나치게 성실한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겉으론 늘 명랑하면서 속얘기는 잘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사바는 성실한 아버지와 닮은 아리마를 좋아하는 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극복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루이의 경우는 빼어난 외모에 자폐적인 성향이 합쳐진 신비스런 분위기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루이는 특이 성격이긴 하지만 주인공 츠카사보다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에 가깝다.
루이는 초반에 츠쿠시의 가슴앓이의 대상이자 츠카사의 연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나중에는 츠카사 때문에 힘들어하는 츠쿠시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다정한 친구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 들어 출연 커트 수가 급격히 줄고, 작가의 표정 묘사마저 무성의해져 연기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루이가 조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츠쿠시와 맺어지기를 바랬던 필자 같은 팬들은 안타깝기만하다.
아사바의 매력은 과장된 자기도취 속에 감추어진 속 깊고 다정한 성격. 루이가 어린 시절의 자폐증을 신비한 분위기로 승화시켰다면 아사바는 왕자병을 애교로 승화시켰다.
아사바는 처음에는 자신의 매리랜드 계획을 위해 유키노를 떼어놓고 아리마를 포섭하려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선 곧 포기한다. 그 후에는 조연 답게 주인공 아리마의 어두운 내면을 잘 이해하고, 지친 아리마가 등을 기댈 수 있는 성실한 친구가 된다. 유키노와 아리마가 잘 되도록 누구보다도 애쓰는 그는, 단 한 사람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고 싶다며 순정파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아사바가 대책없는 여성밝힘증이 아닐까 했던 의혹도 여기서 풀린다. 이처럼 남자 주인공들과 친구인 둘은 잘 생긴 거 말고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는 개성 만점의 캐릭터로 주인공들의 애정 전선에, 독자들의 재미 전선에 톡톡히 한 몫을 해낸다. 개인적으로 루이는 원작 만화에서, 아사바는 애니메이션 판에서가 훨씬 멋졌다는 생각이다.
이재연 skiola@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