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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독일10주년]베를린 망치소리… ‘게르만’ 다시선다

입력 | 2000-10-01 18:44:00


통일 10주년을 맞아 찾아간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어느 때보다도 활기찼다. 11년 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환호했던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을 중심으로 약 300㎢의 동베를린지역은 거대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통일독일의 의사당이 된 제국의회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울리히 알브레히트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베를린 재건은 통일이후 동독인의 삶의 변화에서 시작된 혁명을 완수하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서부공업지대인 에센에서 온 관광객인 조프케 베른트(61)는 “베를린 역사(役事)는 독일인의 위대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자랑했다.

독일정부는 91년 통일시대의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이후 지금까지 200억마르크(약 10조원)의 이전비와 910억마르크(약 46조원)의 재건비를 베를린에 쏟아붓고 있다.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을 정치 경제 문화예술 미디어의 중심지로, 명실상부한 유럽의 중심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요헨 볼커 독일 공보처 동독담당과장은 “통일 후 동서독간 지역적인 경제적 격차로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베를린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작업에는 모두가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동베를린의 중심지였던 포츠담광장 주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대적인 재건축 현장을 둘러보면서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은 웅혼한 건축물을 대했을 때 비로소 발현될 수 있다’는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궤변을 문득 떠올릴 때가 있었다. 폴란드의 관광객 이노비치 파벨(35)도 “독일 경제의 위압적인 면모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40㎢의 포츠담광장의 건설현장에는 메르세데스와 소니의 합작으로 건립되고 있는 거대한 문화센터를 비롯해 20여개에 이르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규모의 건물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또 한쪽에는 95년부터 모두 5억마르크(약 2500억원)를 들여 2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할 전자단지의 조성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160개의 외교공관이 들어선 베를린의 모습에서 독일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알브레히트 교수는 “제국의회의 복원과 동베를린의 재건은 민주적인 전통의 부활이라는 독일 정치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게는 나치의 ‘제3제국’에 이은 ‘제4제국’의 출현에 대한 두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광이었던 히틀러에 의해 세워진 조형물이 숱한 베를린 시내. 이 가운데서도 특히 제국의회를 찾는 사람들은 과거 참혹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의 역사를 되새기게 된다. 현재 연방의회(하원)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제국의회는 1933년 히틀러가 의회를 폐쇄한 지 67년 만에 통일 독일의 정치 중심으로 재탄생했다.

제국의회는 60여개 영방(領邦)국가를 통합한 프로이센 제국의 빌헬름 2세가 1894년 건립했다. 이곳에서 빌헬름 2세와 히틀러의 광신적인 1, 2차 세계대전 시작을 알리는 침략행위에 대한 추인이 이뤄짐에 따라 독재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제국의회는 1933년 화재와 연합군 공습으로 파괴되면서 그 존재가 잊혀져 갔다. 그 후 독일정부가 수도를 베를린으로 정한 뒤 제국의회의 역사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국인 건축가 노먼 포스트 는 의회 복원 공사시 의사당 중앙에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유리로 된 반구형을 새롭게 건립했다. 의사당 명칭은 현재의 하원인 연방의회(분데스탁)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의원이 기존의 제국의회(라이히스탁)를 고집해 결국 제국의회로 남게 됐다.

독일 역사와 영욕을 함께 해온 제국의회가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