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6000마르크에서 통일연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으로 2800마르크를 내고 있지만 통일에 불만은 없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만난 하이델베르크의 교사 페트라 요로 셰크(44)는 통일로 인해 경제적 부담이 늘어났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곁에 있던 동베를린 출신의 건축기술자 클라우스 요헨(58)과 유치원교사인 부인 엘리자베스(50)도 “현재 상황에 만족하진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서독주민들은 훨씬 서로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제국의회에서 만난 청소년 안젤로 테거(15)는 생각이 다르다.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크에서 수학여행 온 그는 “통일에 관심이 없다. 왜 우리 부모가 비싼 통일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독지역 할레에서 만난 공무원 출신 다니엘 하거(63)는 “통일된 것이 아니라 서독이 동독을 점령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골수 사회주의통일당(동독공산당)의 당원이었던 그는 통일로 실업자가 됐다.
통독 10년. 완전한 통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지만 동서독주민간의 생활격차가 점차 줄어들면서 그동안 이들을 짓눌러온 감정의 골은 서서히 누그러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서독주민이 상대를 ‘오시(동독놈)’와 ‘베시(서독놈)’라고 부르는 말이 유행했지만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
울리히 알브레히트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불과 지난해만 해도 지하철에서 무슨 신문을 읽느냐로 출신을 구별했다. 동베를린 사람은 ‘베를린차이퉁’을 읽고 서베를린 사람은 ‘타게스차이퉁’을 읽었지만 이제 이런 구별은 거의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이런 배경에는 통일직후 서독의 54%에 불과하던 동독주민의 소득 수준이 서독의 82%로 크게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자리잡고 있다. 서독주민들은 더 이상 동독주민을 무시하지 않는다.
독일정부는 동독지역의 재건을 위해 매년 1500억마르크(약 75조원)를 투자하면서 올해부터 동독지역경제도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전체실업률도 12%에서 9%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도시에 국한된 얘기다. 작은 도시로 갈수록 서독지역의 2배가 넘는 실업률과 경제적 격차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동독지역의 소도시 주민일수록 상대적인 박탈감과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40㎞ 떨어진 쇠네펠트에서 매일 베를린으로 출근하는 샤데 리제로테(55)는 “열심히 일하지만 단지 동독출신이라는 이유로 다른 동료에 비해 70% 정도의 월급을 받을 때가 가장 슬프다”고 말했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에서 만난 토마스 슐로스(19)는 지난해 직업학교를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실업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그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에 쉽게 휩쓸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독일사회는 분명히 거대한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동서독주민간의 접촉과 서로에 대한 이해는 그들을 가로막아온 마음의 장벽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종착점은 경제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 독일! 하나의 통일된 조국을 위하여.”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의 기폭제가 된 89년 라이프치히의 그 유명한 월요시위에서 독일인들은 그렇게 외쳤다.
그 구호는 이제 통일 10년을 맞고 숱한 난관을 거치며 ‘통일 제2기’를 맞는 독일사회에 ‘완전한 통일’로 가는 새로운 기폭제가 되고 있다.
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