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출범 후 한일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기술이나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의 독도발언,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82년의 역사교과서 파동 이후 일본은 교과서 내용을 사실에 가깝게 개정해 왔다. 그러나 다시 그 내용이 파동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해 놓은 2002년도판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아시아 침략 을 진출 로, 한일합병 은 합법적 조치로, 태평양전쟁은 피압박민족에게 독립에의 용기와 꿈 을 키워준 전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냉전 후 일본사회에서 점차 강화되고 있는 이념의 우경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국권강화 노선이 함께 맞물려 있기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모리총리의 독도발언은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김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KBS-TV와 가진 회견에서, 모리총리는 다케시마(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나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영토라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 이라고 주장했다. 망언 에 익숙한 한국인들이지만 그의 발언은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다. 정부는 우려 의 뜻만을 표시하고 그냥 덮어버리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과서 왜곡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외교부는 즉각 항의하고 강도높은 비판을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
뿐만 아니라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의 총리가 독도는 우리 땅 이라고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를 통해 주장했는데도 KBS는 정상회담에 미칠 악영향과 국익을 고려해서 보도를 삭제하는가 하면, 정부는 다만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 이라는 논평으로 끝내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나 영유권 문제는 외교 이전의 보다 본질적인 민족의 자존과 국가의 신뢰에 관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그동안 일본 천황의 방한을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일본측 보도에 의하면 한일정상회담에서도 한국측이 천황이 언제 한국을 방문하더라도 지장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 며 천황의 조기방한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고,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생각할 때 천황의 방한은 한일관계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합병 을 합법적 조치로 바꾸고, 일본군위안부 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가 아직 미제로 남아 있고, 총리가 독도는 일본 땅 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계속하는 한 천황의 방한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한국인으로부터 환영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 천황의 방한이 구체화되기 전에, 양국 정부는 역사를 바로잡고, 미제로 남아 있는 과거사 부터 정리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한상일(국민대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