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여야 총무협상 때 한 야당총무가 “옛날 여당총무는 돈도 주고 했다는데…”라며 여당총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장면이 기자들에게 우연히 목격됐다. 총무회담의 ‘이면’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사례다.
문을 걸어 잠근 회담장 안에서는 여야 총무들끼리 자신이 속한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개인적인 문제까지 서로 ‘할 말 못할 말 없이’ 주고받는다는 것이 역대 총무들의 얘기다.
총무회담은 한국정치의 시작이다. 정국이 막히거나 꼬일 때면 어김없이 총무들이 나선다. 물론 ‘당론’이라는 것이 있어서 총무의 권한과 재량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역할은 크다. 총무의 협상력에 따라 정국은 풀릴 수도, 경색될 수도 있다.
10월 경색 정국 해소와 여야 영수회담 성사를 위해 민주 한나라당 두 총무가 3일 이틀째 회담했다. 이를 계기로 총무회담의 이면을 짚어본다. 문을 걸어 잠근 회담장 안에서 그들은 과연 어떻게 정치의 매듭을 푸는 것일까.
▽토론보다는 사정〓회담 후 성과가 좋지 않으면 서로 얼굴을 붉히고 회담장을 나오는 여야총무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정작 회담장 안의 분위기는 다르다. “여야 정치회담의 경우 서로의 입장이 뻔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분위기 조성이 오히려 중요하다”는 것이 김영삼(金泳三)정부 시절 여당총무로서 15대 국회 개원협상을 지휘했던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의원의 설명이다.
따라서 총무회담에서 쟁점현안에 대한 토론보다는 우리 입장도 생각해달라고 사정하거나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현 정부에서 여당총무를 지낸 A씨는 “우리도 야당을 해봐서 아는데, 예를 들어 야당이 ‘부정선거 규탄 장외투쟁’을 한다고 치자. 이 경우 공식적인 요구는 ‘부정선거 진상규명’이지만, 막후대화에선 ‘국회에 등원할 명분을 좀 달라’고 역으로 사정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A씨는 “총무회담에서까지 ‘진상규명’만 외치면 협상이 이뤄지겠느냐”고 덧붙였다.
▽윤활유도 필요하다〓씀씀이가 큰 것으로 소문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재임시절 명절이나 현안이 있을 경우 여당총무에게 ‘돈봉투’를 두 개씩 줬다고 한다. 둘 중 하나는 야당총무에게 가는 ‘활동비’. 한 봉투에 많을 때는 5000만원이 들어있기도 했다는 것이 당시 여당총무를 지낸 B씨의 얘기다.
일종의 대야(對野) 정치자금인데, 정치권에선 이 돈을 ‘대화를 위해 당연한’ 투자로 여기는 풍조가 없지 않았다.
야당총무도 당당하게 이를 받아 소속의원들과의 식사비 등으로 쓰는 게 관례였다. 야당가에선 “여당총무가 주는 활동비야말로 가장 안전한 정치자금”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YS시절에도 이런 관행은 남아 있었다. 당시 여당총무를 지낸 C씨는 “명절 때나 휴가 때 1000만원 또는 2000만원씩 야당 총무에게 줬다”며 “국정감사 때는 야당 상임위 간사들에게도 몇백만원씩 돌린 기억이 있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서는 야당총무가 노골적으로 ‘돈 불만’을 얘기할 정도로 여야 촉매제로서의 ‘돈’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 정설. 현 정부에서 여당총무를 지낸 D씨는 “야당총무 후원회 때 1000만원 정도를 기부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말했다.
▽중요한 얘기는 식사모임에서〓여야 총무들끼리 진짜 본론이 오가는 것은 식사자리일 경우가 많다. YS시절 여당총무를 지낸 E씨는 “한달에 식사비만 3000만원이 넘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신한국당 서청원,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 자민련 이정무(李廷武)총무는 부부 동반으로 일본 외유를 함께 다니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명총무'시대]88년 김윤환 대 김원기, 5공말 이세기 대 김동영▼
88년 13대 총선으로 만들어진 민정 평민 민주 공화 4당 체제를 주도했던 김윤환(金潤煥·민정당) 김원기(金元基·평민당)총무는 ‘명총무’로 꼽힌다.
두 총무는 당시 여소야대의 국회 운영을 맡아 절묘한 타협과 협상으로 5공 잔재를 정치적으로 청산하고, 국정감사 부활 등 제도적 민주화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둘러(기다려)’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느긋한 성격의 김원기총무는 민주 공화당 등 다른 두 야당 총무를 ‘따돌리고’ 실질적으로 대여 협상을 도맡기도 했다.
5공말 대통령직선제 개헌 협상 때 여당 총무였던 이세기(李世基)전 민정당의원은 당시 야당 쪽 카운터파트였던 고 김동영(金東英)신민당 총무에 대해 “김총무는 막후에서 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켰다”고 회고했다. 이 전의원은 지금도 김총무의 가족 애경사를 챙긴다.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도 60년대 두 차례 야당 총무를 지낸 경험이 있다. 또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도 세 차례 여당 총무를 지냈다. 원내총무 경험이 있는 정치인들은 으레 “총무를 해 봐야 정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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