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사외이사의 자격, 겸직문제, 주식보유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쟁점은 크게 보면 세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현재처럼 유명무실한 사외이사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둘째는 만약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면 어떤 보완장치를 마련해 이를 개선할 것인가, 셋째는 사외이사가 갖춰야 할 자격은 무엇이며 사외이사의 겸직은 어떤 기준으로 제한돼야 하는가 등이다.
모든 상장기업의 이사회 구성에 있어서 사외이사를 4분의 1 이상 두어야 한다는 이 제도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정책의 일환으로 1998년 봄부터 시행됐다. 그 후 사외이사제도는 더 강화돼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는 상장기업은 내년부터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채우고, 또한 사외이사 중심의 감사위원회가 기업의 감독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 제도가 시행된 지 2년반 밖에 되지 않았고, 또한 강화된 제도는 아직 시행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제도에 대한 논의와 개선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란 단순화한다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감독하는 제도이다. 기업을 100% 소유하고 있는 주주가 사장인 기업에서는 지배구조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기 돈을 자기가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상장기업의 경우에는 기업이 더 이상 대주주의 것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장기업을 영어로는 ‘public corporation(공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아가 주식이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는 기업에서는 대주주 소액주주 종업원 채권자 고객 등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있게 되며 이들간의 관계를 정립시켜주는 것이 기업 지배구조인 것이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의 경우에는 아직도 창업자나 그 가족이 대주주로서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영국이나 미국의 전문경영기업과는 다르다.단적으로 말한다면, 한국의 대기업에서는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대주주, 그러니까 소위 오너와 그의 참모가 실질적으로 기업경영의 주요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개별 기업 이사회의 권한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사외이사제도를 없앨 수는 없다.
왜냐 하면 현재의 한국 대기업은 소유경영체제에서 전문경영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한국의 대기업도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현재의 이사회 제도는 그때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기간 내지는 연습기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국유(國有)기업이었던 포항제철이 이제 완전 민유(民有)기업이 되었다. 정부가 더 이상 포철의 지분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이제 포철의 장래에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 회사 이사회가 내리게 될 것이다. 이 회사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세계 철강산업에서의 위치로 볼 때 이사회가 얼마나 중요한 책무를 떠맡게 됐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과연 현재 포철의 이사회와 이사진은 그런 준비가 돼 있는가. 머지않아 다른 대기업들도 같은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이사회가 사장을 제대로 뽑고, 대규모 투자결정을 내리며, 또한 회사를 감독할 능력을 갖추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제도의 정비와 사외이사들의 양성이 필요하다. 우선 사외이사가 갖춰야 할 자격기준으로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들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사외이사의 자격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부 감독기관 등과의 겸직에 대한 기준과 사외이사의 윤리강령도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외이사의 주식 보유에 대해서도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 이밖에도 자격이 있는 사외이사를 배출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인증업무를 맡을 기관을 상장회사들이 중심이 돼 독립된 민간기관으로 설립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제도는 아직도 도입 초기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이사회는 근대기업의 투명성과 경영책임을 확보하는 필수적인 인프라이다.
정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