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다 가는 방은 있지만 잠자는 방은 없어요.”
울산공장 출장지시를 받고 2일 오후 11시경 고속버스편으로 서울에서 울산에 도착해 터미널 인근인 남구 삼산동의 한 여관을 찾은 김모씨(36)는 여관주인이 한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손님을 한명이라도 더 받아야 할 여관주인이 빈방을 두고도 손님을 거부하는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내 의문이 풀렸다. 만취한 남자가 술집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들어와 2만원을 주며 “쉬었다 간다”고 하자 여관주인은 선뜻 방 열쇠를 건네줬다. 1∼2시간 방을 사용하는 ‘쉬었다 가는’ 손님만 받아도 방이 모자랄 정도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밤새 방을 차지하는 손님은 받지 않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공업도시’ 울산이 소비와 향락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모습 중 일부다.
울산석유화학공단과 직선 거리로 1∼2㎞ 밖에 떨어지지 않은 삼산동과 달동. 불과 3∼4년 전부터 룸살롱과 고급여관 등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부쩍 늘어나고 있다.
8월 말 현재 남구청에 등록된 룸살롱과 나이트클럽 노래방 등 유흥주점은 373개소나 된다. 98년 12월 말(266개)에 비해 40% 증가한 것이다.
특히 삼산동과 달동에만 룸살롱 120개소가 밀집해 있으며 올들어 이 곳에 새로 생긴 룸살롱도 40개소나 된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오후 10시 이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
룸살롱과 함께 여관도 크게 늘어나 올들어 삼산동과 달동에 신규 건립허가가 난 것만 29개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20여년째 근무하고 있는 정모씨(51·울산 남구 옥동)는 “야간작업을 마친뒤 삼산동 등의 유흥업소 밀집지역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때는 ‘국내 최고의 생산도시인 울산이 이처럼 향락도시로 변해도 되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남구청 관계자는 “삼산동과 달동은 주차공간이 많아 고급 유흥업소와 여관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며 “법적인 하자가 없기 때문에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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