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튀고, 단말마의 비명이 높이 솟구쳤다가 잦아든다. 토스카가 로마시(市)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를 찔렀기 때문이다. 무대 암전(暗轉).
가축의 방울 소리가 들린다. 저음 현악기와 팀파니가 소슬한 새벽바람을 그린다. 어린 양치기가 오랜 민요선율을 노래한다. 3막.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로마의 새벽을 느낀다. 잔잔하지만 너무도 달콤한 선율과 분위기에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이것이 푸치니다.'
오페라의 중반, 격동의 순간이 지나면 푸치니는 습관처럼 새벽 장면을 끼워넣곤 했다. 관객이 마음을 추스르고 후반의 대단원에 동참하도록 준비시키는 장치일까.
'라 보엠'에서는 연애의 달콤한 순간이 지나고 생활에 지쳐 헤어지려 하는 주인공들의 심정이 눈 내린 새벽풍경 속에 쓸쓸히 표현된다. '나비 부인'의 새벽장면은 유명한 '허밍 코러스'를 낳았다. 배를 타고 남편이 돌아올 것을 믿는 여주인공이 밤새 그를 기다리지만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선원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만 들려온다는 호젓한 풍경의 묘사다.
'토스카'의 새벽장면이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삽입시킨 것처럼, '투란도트'의 새벽장면은 아리아 '잠들지 말라'를 낳았다.
재미있는 점은, '라 보엠' 이후 푸치니는 새벽 장면을 삽입한 오페라에서만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위에 거명한 오페라들이 오늘날 전세계의 오페라극장에서 사랑받는 데 비해 '서부의 아가씨' '제비' '3부작(트리티코)'등 다른 작품들은 평범한 작품으로 그쳤다. 교향곡의 2악장처럼, 고조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새로운 세계를 준비시키는 새벽장면의 '냉각효과'가 푸치니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효과적 장치였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기자는 '푸치니의 새벽'에 매료돼 가슴을 설레며 헤드폰을 쓰고 몇시간이고 거듭해 듣곤 했다. '토스카'에 거듭 등장하는 '달콤한 대기….'라는 대사 때문에, 로마의 새벽 공기는 훨씬 신선할 것 같았다.
나중에 로마에 가면 꼭 새벽에 일어나 바깥의 공기 내음을 맡아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5년전 로마에 처음 갔을 때 '토스카' 끝막의 무대인 안젤로성은 찾아갔었지만, 새벽의 공기내음을 맡는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날 그날의 계획에 쫓겨다니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
사족. 푸치니가 새벽 장면을 즐겨 썼던 데 비해 그의 대선배격인 로시니는 작품에 폭풍이나 우천의 장면을 끼워넣기를 즐겼다. 그 장면이 가장 장려하게 표현된 부분이 '빌헬름 텔'의 폭풍장면이요, 그 묘사를 압축해넣은 '빌헬름 텔'의 서곡 폭풍의 묘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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