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 앞에 서 있다. 못생겼지만 사랑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이다. 토요일 런던의 그녀는 자신의 품안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이후 불도저의 굉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웸블리경기장(그녀)은 77년이나 된 역사만큼 황폐해졌다. 3, 4년 후 10조달러나 들일 첨단 경기장이 들어서면 사라진 대영제국의 상징으로 경기장을 지키고 있던 그 유명한 쌍둥이 탑들도 다시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탑들은 내 유년기의 추억을 너무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탑들은 내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도 서 있었다. 탑들은 축구가 태동한 고향의 상징이었고 그 기둥 밑에서 잉글랜드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인 1966년 월드컵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토요일 저녁 조명탑의 불이 꺼지면 잉글랜드는 독일과의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를 마쳤을 것이다. 운명의 장난일까. 이 경기는 잉글랜드가 연장전 끝에 4―2로 승리했던 66년 월드컵 결승전의 재판이다.
당시는 잉글랜드 스포츠 사상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비록 한 골은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제프 허스트 경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바비 찰턴 경과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는 ‘에메랄드빛 잔디’를 지배했다.
토요일 오후 경기장을 수놓을 색깔은 그대로이다. 잉글랜드는 붉은색, 독일은 흰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경기할 것이다. 엄숙한 표정의 아스날 ‘전사’ 토니 애덤스는 등 부상만 괜찮다면 팀 주장을 맡을 것이다. 아니면 지난주 심판 발 밑에 침을 뱉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물’ 데이비드 베컴이 조국을 위해 팀을 이끄는 영광을 안을 것이다.
독일은 카르스텐 양커와 함께 ‘중무장한 쌍두마차’를 연상케 하는 올리버 비어호프가 주장을 맡을 것이다.
내가 다소 냉소적으로 비칠지라도 이해해 달라. 오늘날의 경기는 과거보다 더 빠르고 더 조직적이고 더 격렬하다. 그러나 66년 잉글랜드와 독일은 흠잡을 데 없는 최고였다. 펠레와 브라질 선수들, 에우제비오와 포르투갈 선수들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결승까지 오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2000유럽선수권에서 잉글랜드와 독일은 1회전도 통과하지 못했다. 두 나라는 모두 윔블던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옛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1과거 얘기는 일단 접어두자.
다음주 유럽과 미주에서는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32경기가 열린다.
주목되는 것은 베네수엘라와 일전을 치를 브라질이다. 골잡이 호마리우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완더리 룩셈부르구 감독은 조만간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으로 교체될 것이다. 이것은 축구의 ‘소중한 것’이 무릎을 꿇는 슬픈 장면이다. 스콜라리 감독은 브라질 축구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아름다운 경기(Beautiful Game·펠레가 명명한 축구의 또 다른 이름)’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자신의 개성을 펼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패배를 감수하기보다 치사하게라도 이기는 것이 그의 지상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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