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페이드, 왓 라이즈 비니스, 아이즈 와이즈 셧, 스토리 오브 어스….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제목들이다. 할로우 맨이나 시월애 같은 영화제목도 무슨 인간, 무슨 사랑에 관한 것이겠거니 하지만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철 안에서 스포츠신문을 뒤적거리던 이가 내 뒤통수에 대고 “무슨 영화제목이 밤낮 이 모양이야! 꼭 주문(呪文)같구만”이라고 투덜댄다. 그래서 나는 영화제목과 주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주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글이다. 믿는 이들은 주문을 반복해서 암송하거나 종이에 써서 불태우게 되면 바라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주문이라고 하면 우선 동학의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의 주문이나, “훔치훔치...”로 시작되는 증산교의 태을주가 떠오르고, 불교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나 ”옴 마니 반메 훔”(Om mani padme hum) 그리고 힌두교에서 가장 성스런 음(音)으로 간주된다는 “옴”(Om, Aum)이 생각난다.
주문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주문을 반복하게 되면 말하는 이의 의식이 저절로 조절되어 의식의 심층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주문은 감추어져 있던 내면의 심층 세계를 열어놓는 열쇠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영화제목이 주문과 같다 할 때, 그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화제목의 무의미함을 말하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주문의 의미가 아니라 주문을 반복 암송하는 것처럼, 영화제목도 그 의미보다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효과가 중시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요즈음의 영화제목이 주문에 필적할 만할까? 상당수의 영화제목이 평범한 한국사람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토록 상식인의 접근을 거부하도록 영화제목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여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인가? “이게 도대체 뭔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인가? 그래서 알려고 노력하는 자만 알게 하기 위하여?
그러나 영화제목 붙이는 이들에게 이런 정도의 ‘오만한’ 속내도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제목은 영어제목을 그대로 음차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들여 우리에게 맞는 영화제목 붙이기는 귀챦고, 여태 별로 커다란 저항을 받지 않고 그럭저럭 지내왔기 때문에 이래도 되는가보다 하고 계속 말도 안되는 영화제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제목은 마치 ‘암호’처럼 은유적이거나 환유적으로 영화 전체를 나타내도록 만들어져도 좋고, 또 주문처럼 말로 전달될 때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만들어져도 좋다. 그러나 어느 쪽도 아닌 채, 단지 영어제목을 음차하는 요즘의 방식은 정말 꼴불견이다.
영화 한편을 한마디로 멋있게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영화제목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우리의 오관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주문같은 영화제목 기대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가?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