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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문화 캠페인]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돈 쓰기

입력 | 2000-10-05 19:10:00


“왜 그렇게 아등바등 돈을 버십니까.”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 버둥거리는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뭐라고 할까. 십중팔구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재산이 무조건 축복일 수는 없다. 유산 상속은 잘못하면 후손들을 망치고 패가망신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재산 많은 집안 치고 형제 사이 좋은 경우 못 봤다’거나 ‘물려받은 돈으로 흥청망청 지내다 자립심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얘기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젊은 아들(29)이 유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호화생활을 하던 아들이 사업이 부도나자 아버지의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것.

아름다운재단 박상증(朴相增)이사장은 “돈을 버는 것은 인격 실현의 한 과정인데 우리 부모들은 자식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물려줘 자식은 물론 사회까지 망친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청부(淸富)를 쌓고 이를 사회에 환원해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학자였던 고 임창순(任昌淳)선생은 타계 1년 전인 98년 재산을 깨끗이 정리해 자신의 호를 딴 청명(靑溟)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집과 땅을 판 것은 물론이고 소장한 문화재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양도해 기금 20여억원을 만든 뒤 후학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설립한 것. “선생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 뜻은 재단을 통해 영원히 살게 됐다”는 게 이 재단 이사이기도 한 참여연대 박원순(朴元淳)사무처장의 말이다.

㈜KSS해운 박종규(朴鐘圭)회장의 지론은 ‘유산 가운데서 가장 가치가 낮은 것이 재산 상속, 그보다 못한 것이 경영권 상속’이라는 것. 그는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했다. 한때 세무조사에 나섰던 세무당국이 박회장의 집을 수색하다가 미국에서 고학 중인 박회장 아들이 “월 150달러만 송금해 달라”고 호소한 편지를 찾아내고서는 무리한 세무사찰을 사과했다는 일화가 있다.

자녀들에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 살라”는 말을 남기고 주식을 모두 복지재단에 넘긴 유한양행 창업주 고 유일한(柳一韓)씨 경우도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외국에서는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기보다는 학교 또는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치욕”이란 경구를 남긴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상속은 자식들의 재능과 에너지를 망치는 것”이라며 전재산을 털어 도서관 3000개를 세웠지만 자식에게는 한푼도 물려주지 않았다.

스탠퍼드 코넬 존스홉킨스 등 미국의 대학이름은 모두 기증자의 사연을 안고 있다. 웬만한 대학의 도서관과 연구실건물, 강당 등의 명칭은 으레 기증자의 이름을 딴 것들이다.

세계 최대의 부자 빌 게이츠는 하루에 3000만달러를 벌던 와중에도 “딸에게는 1000만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2세에게 한푼이라도 더 물려주기 위해 편법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 한국의 재벌들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한빈(李漢彬) 이영덕(李榮德)전총리와 손봉호(孫鳳鎬)서울대 교수 등은 84년부터 조용히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에 유산 1% 기부 약정을 한 김주영(金柱永)변호사는 “이 1%가 두 딸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야말로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말했다.

▼ "허점많은 상속세 富대물림 一助" ▼

한국에서는 왜 재산의 사회환원보다 부의 대물림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까. 그 근저에는 유교적 가족관념 등과 함께 빈틈이 많은 한국의 자산세제도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상속세율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올해부터 개정법안에 따라 30억원 이상을 상속할 경우 50%의 상속세가 부과된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상속 최고세율을 보면 일본은 20억엔 이상 상속에 70%, 미국이 300만 달러 이상에 55%에 이른다.

그러나 “어찌보면 상속세율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조세전문가들의 지적. 투명한 조세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한 한국에서 ‘상속세는 바보세’라 불리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하승수(河昇秀)변호사는 “96년부터 시작돼 불과 몇 년 사이 수조원의 재산을 확보하고도 16억원에 대한 증여세만을 낸 삼성그룹 2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에서 부를 세습하려면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조세 행정체계가 투명한 미국에서는 같은 상속세라 해도 평생 합산과세제도를 통해 생전에 증여했던 재산이 누적적으로 관리됐다가 사망시점에 초과누진세율이 적용된다.

최근 미국의회에서 상속세 폐지논쟁이 불거진 이유도 이 때문. 폐지를 주장하는 논거는 미국의 상속세가 평생 낼 세금을 이리저리 다 뜯긴 뒤 죽은 뒤에 ‘사망세’ 형태로 내는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 중에는 “어차피 세금으로 낼 바에야 사회적으로 보람 있는 일에 쾌척하는 게 낫다”는 현실적 고려도 깔려 있다.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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