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NGO(비정부기구)의 시대다. 올해 초 '공천반대 명단' 발표로신선한 충격을 던진 총선시민연대는 NGO 활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민간부문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 발행하는 '시민의 신문'(주간)이 펴낸 '한국민간단체총람 2000'에 따르면 국내 NGO는 4000여개. 각 지역에 소재한 지부까지 합치면 무려 2만여개에 달한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국방 관련 NGO는 찾아볼 수 없다. 굵직굵직한 NGO 안에 국방 관련 분과를 따로 두고 있는 곳도 없다. 국방문제가 인권, 환경 등 다른 문제와 결부될 때 해당사안에 따라 대응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방 NGO 결성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방·군사 전문사이트인 '디펜스코리아'(www. defence.co.kr) 게시판에 지난 9월17일 국방 NGO를 결성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네티즌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국방정책은 국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때문에 국방행정엔 '보안'은 있어도 '성역'은 없어야 한다. 무기체계 도입 관련 비리를 폭로해 국방예산의 낭비를 견제하거나 때로 외압에 의해 비틀리곤 하는 국방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여론화할 NGO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국방 NGO 논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디펜스코리아' 운영자 서정범씨(31). 그는 육사(49기) 출신의 예비역 대위다. 지난 98년 예편한 서씨는 현역시절부터 운영해온 자신의 개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인터넷기업인 '디펜스코리아'를 만들었다.
'헤어진 전우 찾기'나 '애인 관리' 등 주로 '소프트'한 측면에 주력하는 몇몇 군사관련 사이트와 달리 '디펜스코리아'는 무기체계, 특수전, 전쟁사, 일반 국방정보 등 다양한 국방관련 콘텐츠를 담고 있다. 운영자인 서씨가 미래전과 관련한 응용소프트웨어 개발도 겸하고 있어 사이트의 내용은 상당히 전문적인 수준이지만 접속건수는 185만건(9월 현재)을 넘어섰다. '국방 NGO 프로젝트'도 상당수 네티즌들이 서씨에게 국방 NGO 결성을 건의하는 e-메일을 보내면서 자연스레 이뤄졌다.
▼국방부도 일단 긍정적 분위기▼
'디펜스코리아'는 이미 지난 4월 NGO 결성의 조짐을 보였다. 현재 180km 이내로 못박고 있는 한국 미사일 사거리 제한규정을 철폐해 자주국방을 앞당기자는 10만인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인 것이 그것이다. 서씨는 서명운동을 벌이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의 전쟁에서는 위성이나 첩보기 같은 장거리 원격 탐지수단과 원격 타격수단인 미사일이 승패를 좌우한다. 이런 판국에 미국에 의해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당해야 할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 사거리 제한은 우주항공분야 발전과 자주국방의 속도만 늦출 뿐이다"
서씨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받는 국가는 북한과 이라크,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들뿐이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사거리 2000∼3000km대의 미사일을 개발해 놓고 있다는 것. '미사일 사거리 권리'를 찾기 위한 서명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국방 NGO 태동을 위한 토양은 사실상 갖춰졌다는 것이 서씨의 분석이다. 국방장관회담으로까지 이어진 남북 화해 분위기,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여전히 강대국에 견제당하는 한반도 현실을 감안할 때 국방자료를 정기적으로 제공받고 국익을 우선하는 쪽으로 국방정책을 이끌어 가는 외국의 NGO 활동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디펜스코리아'는 현재 자문을 맡고 있는 민간부문의 '숨은' 국방전문가들을 중심으로 NGO 결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또 올해 안에 네티즌들과의 적극적인 토론과정을 거쳐 내년 안에 '강한 국방력 건설'을 기치로 내건 국내 최초의 국방 NGO를 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방부의 태도는 일단 긍정적인 것 같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비밀문서가 많고 보안유지가 필수적인 국방행정의 특성상 모든 관련정보의 공개는 어렵겠지만 올바른 국방행정 수행에 도움이 된다면 국방 NGO의 결성과 활동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