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두발자율화가 됐네요. 축하합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이 축하메시지를 들고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을 찾아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반응.
"교육부 발표요? 별 기대 안해요."
육이은군(17, 여의도고등학교 2)의 썰렁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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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교육부는 "두발문제는 학교장이 학생,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민주적 결정이 되도록 하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육군은 "학교에 맡긴다는 것은 종전과 크게 변화될 게 없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옆에 있던 장여진양도 "우리가 그동안 주장해온 것은 '두발제한철폐'이지 '두발자율화'가 아니다"라며 거들었다.
▶육이은군 ▶장여진양
'학교민주화'를 외치며 지난 4월 결성된 중고등연합은 그동안 '두발제한 철폐'를 위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머쓱해하는 기자에게 이들은 "그래도 이번 교육부발표가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죠"라며 어른스러움을 보였다.
어색함을 감추려 두리번 거리던 기자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메모판에 붙여놓은 한 일간지 기사. 어느 중학교 교장이 "두발이 자유화되면 학생들은 행동이 비뚤어지고 머리에 돈을 많이 쓰게 되며 가수들처럼 머리를 하고 다닐 것이 뻔하다"며 독자의견을 제시한 기사였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학생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 어이가 없다"며 웃었다.
"물론 자유화가 되면 처음에는 이상하게 염색하는 학생들도 많겠죠. 하지만 조금 지나면 학생들도 불편함을 느끼고 스스로 단정하고 편한 스타일을 찾게 될 거에요. 학생들 스스로 그쯤은 판단할 수 있어요."
이내 진지해진 모습이다.
"그리고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하는 지금이 이발소에 훨씬 더 자주 가야하기 때문에 되레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요."
현재 중고등연합 회원수는 400여명. 올해 4월 결성됐는데 제법 많은 숫자가 모였다. 물어물어 사무실로 전화해 가입하겠다는 학생들도 가끔 있단다.
"호응이 좋아진 걸 많이 느껴요. 예전엔 캠페인을 하면 '공부나 하지' 하며 한마디씩 하는 어른들도 많았는데 지난달 30일 집회에서는 시민들이 많이 공감해주셨어요."
이들은 지난 9월 30일 명동 유네스코 회관 앞에서 집회를 갖고 두발과 복장제한 및 체벌철폐 등 학교민주화를 요구하는 '학교민주화공동선언'을 외쳤다.
이번 교육부의 '두발자유화' 발표에 크게 영향을 미친것으로 알려진 '청소년연대with' 와는 협력단체. 'with'는 온라인상에서 약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중고생들의 뜻'을 청와대와 교육부에 전달했다.
"저희는 오프라인 운동으로 여론을 이끌어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하지만 온라인의 위력이 정말 대단한 것을 많이 느껴요. 10만명…정말 대단한 숫자잖아요"
육군의 말에 기자는 온라인·오프라인을 휩쓰는 10대들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
"두발제한은 명백한 인권침해행위에요. 단순하게 생각해보세요. 자신의 머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졌어요. 이번 교육부 발표가 난만큼 끝까지 힘을 '두발제한철폐'를 꼭 이룰 겁니다. 물론 저희 목표는 '학교민주화'죠.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거요."
중고등연합은 11월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정식출범할 계획이다.그들은 이날 ‘2차 학교민주화공동선언’을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시종일관 어른스러움을 보였던 이들은 결국에는 풋풋한 학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회원들이 회비를 잘 안낸다며 인터뷰를 '무기'로 기자에게 뱃지들을 강매(?)한 것.
기자는 '학교민주화'라고 쓰여진 뱃지를 가방에 달고 나오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학생들은 어른들 생각만큼 지나치게 어리지 않고 그들을 규제하는 원칙들은 지나치게 낡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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