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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의 디지털 그늘]디지털이 민주제도를 위협한다면…

입력 | 2000-10-08 18:46:00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 의사소통의 대부분을 인터랙티브의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하게 될 것이다. 데스크톱 컴퓨터는 점차 사라지고 대신 우리는 신발이나 허리띠, 안경 모양 등의 컴퓨터를 몸에 걸치고 다니게 된다. 음성인식 기술의 발달로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 목소리만으로도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며 인터넷에 무선으로 연결해 원하는 정보를 동영상이나 텍스트로 언제 어디서나 검색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여론형성-정치 등 개념변화

이렇게 되면 대중매체에 기반한 뉴스의 유통, 여론의 형성과 표출, 정치과정의 참여 등은 기본 개념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다. 오늘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과 원칙들은 대부분 국가 기관의 작동이 종이 위에 인쇄된 텍스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책과 신문이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이 언어 공동체에 기반한 하나의 사회, 즉 근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출판(publication)이라는 말 자체가 텍스트를 대중화함으로써 대중(public)을 생산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내가 대중 매체를 통해 알게 된 뉴스를 나 이외의 다른 구성원들도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 나아가 그 사건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견해를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로 느끼리라는 확신.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우리 의식(we―consciousness)’과 ‘여론’ 개념이 성립됐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여론의 주체로서의 평등한 개인이라는 관념이 완성됐다. 그러나 텍스트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미디어는 개개의 텍스트 소비자로 하여금 제각기 다른 텍스트를 소비하게 함으로써 ‘우리 의식’의 기반을 와해시키고 있다.

◇DB관리는 권력의 문제

이미 인터넷에는 독자가 원하는 내용만을 편집하여 개개인에게 별도의 뉴스를 제공해 주는 회사가 많으며 독자 마음대로 편집하여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돼 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는 정보로서의 뉴스와 그런 뉴스를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대중이라는 개념은 점차 옛날 이야기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료타르가 말하는 ‘감각의 공동체’의 기반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우리는 다시 새로운 중세로 향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의 디지털화는 결국 국가를 ‘정보의 저장과 흐름의 체계’로 변환시킨다. 이제 국가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그 자체며 권력은 컴퓨터 네트워크 속을 흐르는 정보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다. 디지털시대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새로운 의미의 국가와 권력을 ‘우리 의식’을 상실한 대중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겠느냐의 문제이다.

◇규제방안등 새제도 필요

컴퓨터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관리는 이제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권력의 문제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여론의 수렴과 표출의 적절한 방안을 포함하여, 시스템 관리자에 대한 민주적 선출과 부정부패의 통제, 불법 데이터베이스 운용에 대한 규제 방안 등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는다면 디지털 미디어는 민주주의에 도움은 커녕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jkim@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