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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대중문화 째려보기]태조 왕건, 최수종 님께

입력 | 2000-10-09 16:37:00


'태조 왕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이환경 선생님의 힘 있는 스토리 전개와 최수종, 김영철, 서인석, 김혜리 등 여러 연기자들의 눈부신 연기 덕분이겠지요. '용의 눈물' 이후로 모처럼 주말 저녁 9시 45분이면 텔레비전을 켜고 천년도 훨씬 이전으로 빠져듭니다.

처음 최수종님을 왕건 역으로 캐스팅 했을 때는 말들이 많았지요. '야망의 전설'에서 절벽을 오르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온몸으로 연기한 점은 높이 사지만, 사극은 어디까지나 표정연기와 대사를 소화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후삼국을 통일한 영웅이니 만큼 좀더 선이 굵은 연기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험이긴 해도, 왕건 역에는 우락부락한 호걸형보다 오히려 최수종님과 같은 선비형이 더 어울린다고 보았습니다. 왕건은 해군대장군 등을 거치며 장수로서의 명성도 떨쳤지만 전투가 없는 동안에는 글을 읽고 시를 논하기도 했지요. 우리의 현대사에 비긴다면, 태조 왕건은 박정희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까지의 장군 출신의 지도자에 이승만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선비 냄새가 짙은 지도자를 더한 것과도 같습니다. 전자가 후자를 아우르는 것과 후자가 전자를 아우르는 것 둘 다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 흐르는 물이 울퉁불퉁한 바위를 감싸듯, 기본적으로 선비의 풍모를 지니고 있으면서 무예에도 능할 것 같은 얼굴을 고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심하셨지요? 아직 드라마가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최수종님의 연기는 일단 처음의 우려와 비판을 뛰어넘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뛰어난 연기를 펼치시기를 바라며 몇 마디 첨언을 하려고 합니다.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는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 중요합니다. 과거를 아무리 완벽하게 복원한다 해도 그것의 현재적 의미가 밝혀지지 않으면 한낱 복고 취미에 지나지 않지요. 2000년 가을, 우리에게 왕건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은 독일에 가 있는 어느 일간지 기자는 사석에서 이런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태조 왕건이 새삼스럽게 부각되는 이유를 현 정부의 행보와 관련하여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태조 왕건은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한 건국영웅이자 통일영웅이지요. 이런 왕건의 이미지를 제2의 건국운동과 통일운동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 정부의 이미지와 비교할 수는 없을까요? 현 정부가 원하는 미래를 왕건을 통해 나타낸다는 것이지요. 궁예의 심복으로 오랫동안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내고 끝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 또한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합니다.'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중요한 지적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저는 드라마 '태조 왕건'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갈림길을 그 절치부심의 세월 동안 왕건이 어떤 준비를 하느냐로 잡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가 '준비된 대통령'이었지요. 태조 왕건도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하기까지 몸을 웅크린 채 많은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아직 '도선비기'나 연화(김혜리)와의 못다한 사랑 정도가 언급될 뿐이지요.

앞으로 드라마는 신라와의 흡수통일을 서두르는 견훤과 통일을 좀더 여유를 두고 살피는 왕건을 대비시키면서 전개될 것입니다. 참으로 왕건은 참고 참고 또 참은 인내의 왕이었지요. 경순왕이 스스로 신라를 갖다바칠 때까지 기다렸으니까요. 허나 이런 인내는 그 자체로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도선비기'나 여자와의 사랑이 결코 이 기다림의 내용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백하건대 저 역시 5년 전부터 왕건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상당한 자료를 모으기도 했지만 집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 기다림의 내용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대망'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전혀 다른 정치철학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무사의 나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념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왕건에게는 그것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상력으로 메우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문제였지요. '대망'처럼 가지 못하고 그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는 소설은 쓰지 않느니만 못하기에 집필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환경 선생님도 이미 대안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저는 최수종님의 연기 역시 통일의 철학과 건국의 이념을 찾는 지도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집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궁예의 '참모'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최수종님의 연기는 아직 태조 왕건이란 인물의 진면목을 드러내는데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왕건이 준비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최수종님은 어떤 준비를 하시고 계시는지요?

어제는 '슬픈 궁예'란 책을 읽었습니다. 슬픈 것이 어디 궁예 뿐이겠습니까? 견훤도 슬프고 천년 사직을 잃은 경순왕과 신라의 귀족들도 슬프겠지요. 패배한 자의 슬픔과 아쉬움이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저는 왕건 역시 어떤 슬픔을 가졌으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하고 또 준비했건만 막상 최고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더 많은 시련을 만나고 번민의 밤을 보냈으니까요. 한 번 쯤은 이런 승자의 슬픔까지 헤아리면서, 의약분업과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으로 시끄러운 2000년 이 가을에, 왕건의 슬픔을 어떤 식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표현할 지 깊고 넓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최수종님의 눈을 통해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지도자의 슬픔과 고독을 훔쳐보고 싶습니다.

소설가 김탁환 (건양대 교수)tagtag@kytis.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