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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최공필/개혁 핵심은 시장기능 회복

입력 | 2000-10-09 19:45:00


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수많은 고비를 넘어오면서 우리는 정작 우리에게 가장 긴요할 일을 소홀히 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경제의 대내외적 취약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최근의 유가충격 등으로 다시 불거진 이 문제는 이미 지난 수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동안 크게 늘어난 재정 및 거시정책적 부담 때문에 우리 경제의 호주머니도 많이 비어 있다. 예기치 않은 새로운 충격에 대응해 쓸 수 있는 실탄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향후 우리의 노력은 안정화 수준의 대증요법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사실 현 상황을 그럭저럭 관리해 나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때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관된 자세를 지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시점에서 뚜렷한 원칙이 확립되고 지켜지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점차 지칠 수밖에 없다. 미봉책은 단기적으로는 값싼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훨씬 비용이 많이 드는 비효율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구조적 병폐를 극복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첫째, 대기업과 관료조직 및 금융시스템이 시장경쟁 상황에 맞게 재편돼야 한다.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한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특혜에 안주할 권리는 없다.

이들이 시장상황에 적응하려면 의사결정 방식이 상부하달식에서 탈피해 결정·결과의 책임소재를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시스템 차원의 효율성을 무시하는 독단적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위험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을 외면하는 조직일수록 극단적인 결정으로 경쟁력 상실분을 만회해 보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다수의 이익을 담보로 하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경쟁적 견제·균형 기능도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시장경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둘째, 금융시장은 상부의 지시에 좌우되는 정책실험실 이 아니다. 정반대로 자체 생명력을 지닌 위험 식별 및 관리의 장으로 육성돼야 한다. 금리는 안정돼야 하지만 당국의 의지 덕분이 아니라, 금융시장 자체의 조절기능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정책수단이라도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금리 기간구조(term structure)'를 서서히 마비시키고 만다. 특정집단의 획일적인 판단은 다수의 참여를 통해 시장에서 조율된 합의로 운용되는 경제시스템을 결코 이겨낼 수 없다.

시장기능이 살아나려면 전반적인 시장규율을 해치는 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책임추궁이 뒤따르는 대신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시장메이커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 시장의 발전을 발목잡는 규제는 과감히 배격돼야 한다.

셋째, 민간 참여자들은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시장의 불완전성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당국의 개입과 보조에 계속 의존한다면 결코 미래에 적응할 수 없다. 특히 금융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증폭시키는 공적자금 투입에 앞서서 새로운 시장의 힘을 키워나가는 내부적 노력이 최우선적으로 강조돼야 한다. 범세계적 경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장중심의 경제체제가 구비되지 않으면 공적자금 투입은 당초 의도했던 구조조정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무수익 여신의 증가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향후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은 새로운 다수의 참여자가 주도하는 투명하고 건전하며 효율적이고 자발적인 시장경제의 육성이다. 이제 각종 지지장치로 유지되는 협소하고 비효율적인 시장의 작은 이익에 만족하지 말고 시스템의 효율성이 강조되는 금융시장 자체를 키워나가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 결과로 우리 경제는 경쟁력 강화는 물론, 한 단계 높아진 시장경제의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고루 가져다 줄 것이다.

최공필(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준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