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관객들과 함께 을 본 후 짧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여러 모로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감독. 데뷔작인 을 들고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그는, 부산의 길거리에서 본 어떤 상황에 영감을 받아 차기작인 을 완성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김지석 씨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자 내가 사랑하는 감독, 부산영화제를 정말 사랑하는 감독"이라며 파나히 감독을 소개, 관객들의 열띤 박수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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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파나히 감독이 동경영화제, 홍콩영화제 프로그래머 등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고'라는 말을 연발해 나를 기쁘게 했다"며 부산영화제에 대한 파나히 감독의 애정을 살짝 전해주었다.
파나히 감독은 으로 제48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로 97년 로카르노영화제 대상을, 신작 으로 제51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상복 많은 감독.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어김없이 작품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그는 올해도 이란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 과 함께 부산을 찾아 영화제의 열기를 호흡했다.
▶남성 감독이 여성 문제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여성의 도움을 많이 받았나?
난 여성 차별이 심각한 이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누가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이란의 여성 문제는 내가 살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친구와 둘이 썼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여성들에 보여준 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 의 조연출을 담당한 사람도 여성이다.
▶영화 속에서 담배 피우는 걸 제약당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담배를 통해 당신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담배에 대한 제약은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여성들이 안고 있는 제한이나 한계를 이야기하기에 담배라는 소재가 적당할 것 같았다. 만일 담배가 아니라 사형처럼 좀 더 무거운 소재를 사용해 '제한과 한계'를 이야기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난 담배에 대한 제약을 모든 인간들이 처해있는 제한과 한계의 상황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왜 주인공들이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왜 그녀들이 탈옥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등의 문제가 영화 속에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관객들이 직접 영화에 몰입해 그 이유를 생각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딸을 낳고 괴로워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은 당신 자신이 딸을 낳으면서 겪었던 경험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들었다.
난 그 장면에 이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물론 그 장면은 내가 겪었던 경험과 무관하지 않지만, 그뿐 아니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다 내가 살아온 경험의 일부다. 그 장면에만 특별히 내 경험을 담아냈던 건 아니다.
▶은 사회 고발 정신이 투철한 영화인데, 당신은 영화라는 매체가 현실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영화가 사회 변화의 작은 동기를 제공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난 이 영화가 사소하게나마 사회 변화의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감독이 아니라 남성의 입장에서 남자들이 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남성들은 여권신장에 최소한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작과는 달리 핸드헬드 카메라를 많이 사용했는데.
촬영기법은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의 주인공들은 계속 누군가에 쫓기고 있기 때문에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하는 게 적당할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네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첫 번째로 등장하는 여자아이가 18세 밖에 되지 않았고 이상향을 꿈꾸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핸드헬드 카메라 촬영이 어울릴 듯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여성들은 연륜이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고정된 카메라 워크를 주로 사용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꼬마 여자아이의 연기가 리얼하다. 연기지도는 어떻게 한 것인가?
"울어라" 하고 말했더니, 바로 울었다(웃음). 그 여자아이는 실제 내 조카인데, 아이를 길거리에 세워놓고 나와 스태프들이 슬쩍 사라져버렸더니 당황해서 울기 시작했다. 그때 그 아이가 생소해하며 두리번거리는 장면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황희연 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