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철저히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검열 왕국으로 소문난 이란의 문화 정책이 이란 감독들의 영화 만들기에 끊임없이 딴지를 걸고 나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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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관객과의 대화
그래서인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부터 모흐센 마흐말바프까지 그 동안 우리가 보아온 이란 영화들은 참 착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역시 착한 영화의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흔한 키스신조차 하나 없고, 주먹다툼을 벌이는 폭력신도 없다.
그러나 은 분명 이란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용기 있는 영화다. 빈곤과 억압, 숱한 사회적 편견들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란 여성들의 삶이 '날 것'의 언어로 재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란 내에서 이 영화는 극장 개봉을 금지당했으며, 이란 여성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국제 영화제 진출까지 봉쇄 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렵게 이국 땅에서 상영되는 은 그렇다고 혁명적인 대사를 읊조리는 영화는 아니다. 감옥에서 탈출한 네 명의 여성들이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가족과 사회에 유린당하는 모습이 포장되지 않은 영상으로 차분히 그려져 있을 뿐이다. 단 한 장면, 딸이 태어난 후 우울해하는 가족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은 하고 싶은 말을 단출하게 끝낸다.
주제를 나열하는 순서로 보면 이 영화는 철저히 두괄식 어법을 택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곧바로 한 아주머니가 산부인과 간호사와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이 보여진다. "초음파 검사 땐 분명 아들이라고 했는데...정말 딸이 맞나요?" 아주머니는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딸을 출산한 이 가혹한(?) 현실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 뒤부턴 왜 이 아주머니가 딸의 출산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마냥 슬퍼했나에 대한 사례보고가 이어진다.
은 분명 몇 개의 단편을 이어 붙인 짜깁기 영화는 아니지만, 찬찬히 분석해보면 언뜻 옴니버스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주인공이 계속 바뀌고 독립된 사건들이 모두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탈출한 여성은 모두 네 사람. 성차별이 없는 천국 같은 세상을 꿈꾸며 사랍행 버스 티켓을 끊는 18세 소녀부터 아이를 가졌지만 낙태를 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는 20대 초반의 여성까지, 그들의 삶은 모두 출구 없는 터널처럼 암울하다.
그들은 감옥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회라는 더 큰 감옥에서 한 치도 빠져나갈 수 없는 감금된 몸이다. 자유를 잃고, 가족을 잃고, 사랑을 잃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그들의 삶은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악 순환의 고리 안에 갇혀 있다.
그래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내세운 이 영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원형의 궤도 안에서 이탈할 수 없는 이란 여성들의 삶을 '순환'이라는 빛나는 단어 하나로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쳇바퀴 같은 원 안에 갇혀있다. 나는 순환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모든 인간들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여성 문제만을 건드리는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황희연 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