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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이세돌, 아버지 같은 형 부담됐나

입력 | 2000-10-10 19:09:00


6일 낮 12시10분 서울 한국기원. 이세돌 3단(17)이 돌을 던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검토실 기사들은 놀라는 분위기였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대국이 이례적으로 2시간 만에 끝난 것이다. 더구나 이세돌 3단의 소비시간은 고작 25분. 아마추어가 보통 한판을 두는 시간이다.

이날 벌어진 SK가스배 신예10걸전 결승 3번기준 무척 관심을 끄는 대국이었다. 비록 신예들만 참여하는 미니 기전이긴 하지만 결승전 사상 처음으로 이상훈(25) 이세돌 3단의 형제대결 벌어진 것.

특히 두 형제의 관계가 보통 이상으로 돈독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바둑 유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형과 여덟살 아래의 동생. 특히 철모르는 동생을 뒷바라지해 온 형이었다.

대국전 이들은 서로 ‘양보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승부는 너무 싱겁게 결말이 났다.

[장면도] 백(이상훈 3단)이 ○를 두자 흑이 돌을 던진 장면. 두 대국자는 복기에서 반면 승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기사들은 한집반 이내 미세한 승부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의 형세 판단이 정확할까.

이날 대국장에 먼저 도착한 것은 말쑥한 감색양복을 입은 형. 대국시각인 오전 10시 정각에 도착한 동생은 피곤한 모습에 체크 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대국이 시작되자 이들은 ‘콩 뿌리듯한’ 빠른 속도로 바둑돌을 놓았다. 너무 빠른 착수에 계시원이 기록에 애를 먹을 정도였다. 중반 고비마다 백을 잡은 형은 그나마 10분씩 장고했지만 동생은 2분 이상 장고한 적이 한차례 밖에 없었다.

국후 복기 검토에서 두 대국자는 흑이 도저히 덤을 낼 수 없는 ‘반면 승부’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검토실에서는 흑이 불리하지만 미세한 승부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왔다. 프로가 말하는 미세한 승부는 한집반 이내. 평소 불리한 바둑을 역전시키기로 유명한 이세돌 3단이 너무 빨리 승부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프로기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동생인 이세돌 3단이 부담이 컸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사제관계인 조훈현 이창호 9단이 처음 공식대국할 때 심적 부담이 컸던 이9단이 80여수만에 돌을 던지는 등 9연패를 당한 적이 있다. 이후 이9단은 조9단을 극복했다. 하지만 이상훈 이세돌 3단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아버지나 같은 존재의 형과 대국을 갖는 동생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형제는 6개월전부터 따로 살고 있다. 이세돌 3단은 대국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몸도 안좋았고 형세도 불리하고 두기도 싫었고….”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