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리고 아웅’도 이 정도면 가히 ‘천재적’이다.
대한축구협회는 10일 시드니올림픽 칠레전에서 상대 선수의 얼굴을 발로 차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4000스위스프랑(약 250만원)의 벌금과 국제경기 4경기 출전정지 처분의 중징계를 받은 이천수(19)를 12일부터 시작되는 아시안컵축구대회에 출전하는 대표선수로 선발했다.
축구협회가 감기 몸살로 국내에 머물고 있는 이천수를 부랴부랴 아시안컵 엔트리에 등록을 시킨 이유는 11월 이란에서 열리는 제32회 아시아청소년(19세 이하)대회에 그를 출전시키려 하기 때문.
청소년대표팀이 조 추첨에서 라이벌 일본을 비롯해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강호들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자 이천수의 출전 여부가 우승이라는 목표 달성의 주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축구협회는 아시안컵 출전선수 명단에 이천수를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이 8강전까지 진출할 경우 예선 3경기를 포함해 이천수의 국제경기 출전정지 처분을 ‘자연 소멸’시키기 위해 이런 편법을 동원한 것.
문제는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에서의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중징계를 받은 마당에 반성할 시간을 주지 않고 굳이 이런 편법으로 면죄부를 주고 태극 마크를 달아줘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천수 본인도 충격과 죄책감 속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뉘우치고 있다.
하지만 대표팀이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이런 미봉적인 편법을 동원한다는 것은 비난을 면키 어렵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지 못하고 늘 이런 식의 미봉책만으로 일을 수습하려고 한다면 한국축구의 도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