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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고왕인/'사랑의 집' 함께 지어 봅시다

입력 | 2000-10-11 18:54:00


이번 여름 더위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8월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변에서는 13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아주 특별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32채의 집이 지어지는 것도 장관이었지만 집주인이 될 입주자들과 생면부지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집, 아니 하나의 마을을 건설하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특별한 기쁨 준 '해비타트'▼

여기에 전문 설계업체, 건설업체, 건설 기술자들이 기술과 자재로 적극 협조했다. ‘평화를 여는 마을’은 그렇게 지어졌다. 건축 전문가들의 배타적인 일로만 여겨지는 건축에 자원봉사자들을 초청하는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Habitat for Humanity Korea)의 운동 방식은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생전 처음 집짓기에 참여한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특별한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모두가 건축가였다. 한 가정이 집을 지을 때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함께 도왔다. 집짓기는 생활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렇게 지어진 집들은 소박하지만 안락했으며 모두가 자기 집에서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었다.

집 없는 사람이 집을 갖기 위해서는 좀 더 저렴한 신기술 개발을 기다리거나 돈이 충분히 모일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는 집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재산이 얼마나 있거나, 배운 것이 얼마나 되거나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보금자리(habitat)를 가질 권리가 있다.

해답은 있다. 각자의 능력에 맞게 집을 장만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은 지금까지 각자가 축적한 재력과 기술, 그리고 지혜로 지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집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집 지을 땅값은 말할 것도 없고 기초와 벽 그리고 지붕을 만든다고 집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집은 기본적인 시설을 갖춰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정은 옛날과 너무나 달라진다.

물론 집 짓는 일은 수월치 않다. 더구나 오늘날엔 자기 집을 짓는 일에조차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이웃집을 짓는 일에 참여하기란 더욱 어렵다. 더구나 옛날과 달리 집 짓는 일은 법적인 절차도 까다롭고 집 짓는 방법도 수공예적인 방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의식과 사랑이 있으면 그것은 가능하다. 더구나 전문가들의 협조를 전제로 한다면 그 일은 수월할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의 40%가 전세를 산다. 서민들은 이사철만 되면 촉각이 곤두서는 것이다. 상황이 더 나쁜 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여기서 주택 상황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나 대책, 구조적 문제 등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다만 주택문제라는 것도 정부가 도맡아 해결해야만 하는 정부만의 숙제는 아니라고 믿는다. 물론 그 규모나 양에서는 미약하지만 우리 민간인들이 모두 각자의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눌 때 ‘구체적인’ 해결책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거난 해결 실마리 될수도▼

사랑의 집을 짓는다는 일은 ‘자기를 헐어 남을 지어 주는 일’이다. 누구나 자기를 헐어 남을 주는 부분만큼 더불어 사는 사회가 건설된다고 믿기에, 한 티스푼만큼이라도 보태 보려는 마음에 해비타트운동을 한국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전문가와 입주자, 자원봉사자가 함께 각자 맡은 일을 허겁지겁 하다 보면 어느새 집이 번듯하게 올라가는 해비타트 현장에는 항상 감격이 있다.

해비타트를 통한 ‘사랑의 집짓기’가 하나의 유행이 됐으면 좋겠다. 함께 하면 주거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해비타트가 심어 줬으면 좋겠다. 내년에 한국해비타트는 전국 5개 지역에서 120가구를 건설한다. 자원봉사자들의 단장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맡으며 전 세계인이 함께 땀을 흘릴 것이다. 민간 차원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을 바라며 많은 분들의 참가를 기대한다.

고왕인(한국해비타트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