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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산영화제 빛낸 여성감독 5명 '당당한 카리스마'

입력 | 2000-10-11 19:08:00


“영화는 심장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사람은 각자 달라도 심장은 모두 같지 않습니까!”

10일 오후 부산 남포동 극장가 PIFF광장 야외무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인 이 곳에서 한 금발머리 여성감독의 말에 박수가 터졌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여성감독이 유난히 많다. 그 가운데 장편 극영화를 출품한 동서양의 여성감독 5명이 이날 한꺼번에 야외무대에 올랐다. 길을 지나다 야외무대 앞에 주저앉아 경청하던 사람들 중에 교복차림의 여고생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채로웠다.

여성감독들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가을의 달’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탔고 올해 ‘1967년형 시트로엥’으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호주 감독 클라라 로. 또 캐나다 감독 길렌 디온느, 노르웨이 감독 베리트 네쉐임, 프랑스 감독 안느 빌라세크, 홍콩 감독 임애화가 야외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정다운 인사를 건넸다.

길 한복판에서 치러진 대화마당이어선지 이야기는 영화보다 ‘여성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집중됐다. 청중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의 차이를 실감하는 듯했다. 베리트 네쉐임 감독이 “노르웨이에선 영화감독의 50%가 여성”이라고 소개하자 짤막한 탄성이 터져나왔지만, 홍콩 임애화 감독이 “홍콩에서 나는 주목을 많이 받는데 여성감독이라 신기하다는 편견에서 비롯된 찬사이기 때문에 좋은 게 아니다”라고 하자 한 여고생은 혀를 차며 “어쩜, 우리랑 똑같냐…”하고 중얼거렸다.

여성감독들끼리의 무대가 자신들에게도 신기했던 모양인지 감독들은 이야기 도중 무대위에 선 서로의 모습을 계속 카메라에 담으며 즐거워했다.

“어제 ‘십이야’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게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어요. 홍콩에선 포커스가 주로 배우에게 맞춰지는데 부산에서는 감독이 정말로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들어 황홀했습니다.”(임애화)

영화감독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조언 한 마디씩을 해달라는 요청에 짤막하지만 단호한 코멘트로 열렬한 박수를 받은 사람은 클라라 로 감독.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세요. 그러면 진정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번쩍 손을 들어올려 환호하며 사진을 찍으러 달려나가던 한 여성 청중이 눈에 띄길래 뭐가 그렇게 좋은지를 물었다.

“멋있잖아요. 클라라 로 감독에게서 내가 동경하던 여성적 카리스마를 보았어요!”(정소영·25·학생)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