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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신간]대간-암행어사가 조선을 지켜냈다

입력 | 2000-10-13 18:54:00


우리 사회를 갉아 먹는 암적인 존재 중에 첫머리를 차지하는 것이 부정부패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부정부패 수위는 심각한 정도를 넘어 적발되더라도 “재수 없어 걸렸다” “정치적 음모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도덕적 불감증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절망적 상황이다. 이처럼 온 사회 구석구석이 부패한 상황이다보니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 것인지 난감한 지경인데, 이런 때에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아보자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조선의 부정부패 어떻게 막았을까’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50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부정부패를 막는 제도적 시스템에 있었다고 보고 있다. 바로 대간 감찰 암행어사 등의 제도적 장치가 조선의 부정부패를 막고 체제 유지를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제도인 대간은 사헌부 관원인 대관(臺官)과 사간원 홍문관 관원인 간관(諫官)을 합친 말이다. 대관은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감시 탄핵하고, 간관은 임금의 과실을 간쟁하는 것이 주요 임무인데, 이 대간 기능을 통해 임금의 전횡을 견제하고 백관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했기에 조선왕조가 그토록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간은 조선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단지 이런 제도적 측면만이 아니라 이들 감사기관원들의 자질과 부패 척결 의지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고위관료와 국왕까지도 견제하는 대간은 ‘천하 제일의 인물이어야’하고, 암행어사는 ‘청렴결백한 젊은 관리여야’ 하는 이유도 이런 인물들이 감사의 직책을 맡아야 소신껏 두려움 없이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현재 상황을 반성할 수 있는 풍부한 사례들을 들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는 감사기능 자체가 당쟁의 한 도구가 된 점이나 상하 기강이 엄정했던 사헌부에서 항명사건이 자주 일어났던 점 등을 들면서 현재 검찰이나 감사원 구성원들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심각한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에서 도덕적 수양을 강화하는 가치관을 부활해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 자세를 견지한다.

“이 길밖에는 없다. 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죽인다 해도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돌아가도 이 길이 오히려 첩경(捷徑)이다.”

막힐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한 사학자의 부정부패 방지책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오히려 원론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풍부한 사례를 들어 마치 오늘날 부정부패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는 듯한 생동감과 재미를 주는 점이 미덕이다. 풍문으로도 탄핵할 수 있었던 대간들이나, 의혹만 받아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벼슬아치들의 옛 사례가 “재수 없어 걸렸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마비된 도덕성에 조금이라도 경종을 울린다면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조선의 부정부패 어떻게 막았을까'/ 이성무 지음/ 청아출판사/ 369쪽/ 1만원▼

이덕일(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