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는 이런 고백 같은 기도를 했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난 다만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렇구나, 만인을 사랑한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제대로 사랑하기 힘들겠구나, 그렇지만 한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겠구나. 그런 그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노벨 평화상도 빛날 수밖에.
나는 평화상이 노벨상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문학상이, 과학상이 수상자가 쌓아 놓은 것을 토대로 받는 상이라면 평화상은 그 사람이 나누어주었던 것으로 의미를 갖는 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상을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이 받게 됐다.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그 이국적인 상을 우리가 받다니, 내가 받은 것처럼 가슴은 기분 좋게 떨리고 마음은 사뭇 흐뭇하다. 사실기대는 했었다. 이번엔 우리가 받아야 한다고. 사람 위에 체제가 있었던 냉전체제의 썰렁한 유물이 사라져 가는 마지막 땅이 아닌가. 그 냉전체제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생이 가슴앓이를 해왔던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냉전체제 속에서 면죄부를 주었던 독재, 그 독재에 짓밟힌 인권…. 생이 할퀴고 간 상처를 오랫동안 안고 살아온 인생들이 비틀린 민족사의 한복판에서 문득문득 한숨으로, 눈물로, 그리고 체념으로 기다려온 남북화해의 햇살.
이번 노벨 평화상은 그 햇살이 키워낸 희망의 싹이라고 생각한다. 그 싹의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체제 때문에 아픈 사람이 없기를, 독재 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휴전선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를, 백두에서 한라까지 가보고 싶은 데 갈 수 없는 사람이 없기를.
자문해 본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없었다면 이 상이 있었을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바란다. 세계사의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낸 땅, 한반도의 화해를 기대하며 우리를 찾아온 상이 정파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우선은 여야가 함께 기뻐하자. 야당도 담백하게 축하해 주자. 평화 정착의 기대로 찾아온 상, 순수한 상이 아닌가. 차라리 한나라당은 이 상이 찾아오게 된 이유를 되새김질하면서 그동안의 남북문제에 대한 자세를 반성해야 한다. 남북공동선언을 국민에게 환상만 심어준 거라고 폄훼해온 태도, 경의선 복원 기공식에 불참한 이회창 총재,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전진배치된 극단적인 수구 인사.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한나라당이 반통일 세력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므로, 한나라당이 대안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만들어놓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기반을 허물 거라는 불안이 없어야 한다.
여당도 이 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 이 상은 은퇴한 정치인이 아닌 현직대통령에게 주는 상이다. 당연히 그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는 상이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노래하고 끝날 상이 아니다. 우리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가 뭔지를 상기시키는 상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
화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제는 홀로 제대로 서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홀로 서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김대통령의 내치(內治)를 걱정하는 소리를 듣는다. 주가는 폭락하고, 주부들은 살림을 꾸려가기 겁난다고 한다. 경제만 빨간 신호인가? 한빛은행사건에다 4·13 선거사범 편파수사 의혹으로 정치권력의 도덕성이 도전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처럼 돋아난 남북화해의 새싹이 내치의 병으로 다칠까봐 불안해 한다.
그 우려가 어지럽게 퍼져 가는 상황에서 받게 된 노벨 평화상은 절대로 내치 실패의 면죄부가 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페레스트로이카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르바초프가 내치 잘못으로 실권한 전례도 있다. 나는 기도한다. 이 상으로 집권당이 자만하지 않기를,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기를.
이주향(수원대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