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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주우진/대우車 살리기 해외매각뿐

입력 | 2000-10-16 18:34:00


금주에 개최되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한국 자동차회사와 유럽자동차 회사들이 서로 의전용 차량을 공급하기 위해 신경전을 폈다고 한다. 독일의 벤츠와 BMW 그리고 한국의 현대자동차에서는 최고급 모델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국 정상을 위해 방탄차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알려지는 이유는 자동차 소비행위 자체가 공개적이며 상징성이 짙어 세인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공기업化론 정상화 힘들어▼

자동차 산업은 세인의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산업이다. 한국의 자동차 및 연관 산업은 전체 고용인구의 7%를 차지하는 전후방 연관효과가 높은 산업이며 무역수지에도 100억달러 이상 기여해 반도체와 함께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자동차 및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총 취업 인구의 약 12%로 우리보다 더 높은 실정이다. 하이테크 및 서비스 산업이 발달한 미국 일본 독일도 굴뚝산업 으로 불리는 자동차 산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고용효과면에서 자동차산업을 대체할만한 산업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1980년대에 곤경에 처한 르노를 한시적으로 공기업화해 고용을 유지했는데 오늘날 르노는 성공적으로 정상화됐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닛산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독일 폭스바겐은 한 때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주정부에서 출자했으며 주4일 근무제를 실시한 적도 있다. 우리도 고용만을 생각한다면 대우자동차를 공기업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근로자들도 이 방안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력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를 고려해야만 한다. 오늘날 세계 자동차시장에서는 약 2000만대의 공급과잉으로 인하여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격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은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른바 메가 메이커 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으며, 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생산규모 도 200만대에서 400만대로 확대됐다. 이런 과정에서 1980년대만 해도 세계적인 기업이었던 일본의 닛산, 미쓰비시, 마즈다자동차가 하나씩 경쟁력을 잃었고 급기야 외국 자동차사의 자회사로 전락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확실한 경쟁 우위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은 대우자동차는 공기업화한다해도 정상화될 확률은 매우 작다. 경쟁력 측면에 비중을 둔다면 매각대금을 다소 덜 받더라도 대우자동차를 외국기업에 매각해 세계 자동차산업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산업정책은 고용을 최우선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부실이 인위적으로 은폐된 채 기업은 계속해서 물량경쟁을 했으며 문제가 터졌을 때에는 이미 회생 가망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한국 자동차회사들도 자신의 역량이나 내수시장 규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각 200만대의 생산시설을 목표로 물량경쟁을 벌여 부실을 자초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엄청난 공적자금 투입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있다.

▼고용보다 경쟁력이 먼저▼

현재 우리는 고용과 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경쟁력 강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본다. 만약 대우자동차를 매각하되 일정기간 동안 고용안정을 보장받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낸다면 매각에서 오는 부작용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5대 자동차 메이커 중 3개가 외국회사에 인수됐다. 평상시 외국인 투자문제에 비협조적이었던 일본 통산성이 이번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인수합병과정을 지원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자동차산업의 경쟁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며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다른 각도에서 시사해 주고 있다.

주우진(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