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소리를 듣고 연기를 끝내고 나면 제일 먼저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의 얼굴을 봅니다. 제가 했던 연기가 어땠는지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투캅스’의 강우석 감독님의 경우 그의 성격처럼 빠르고 분명합니다. “안 좋아. 다시 한번!” 혹은 ”오케이. 그 이상 연기 안 나와. 다음 컷 준비!“ 라고 합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님은 바로 그 영화 제목처럼 아무리 힘든 장면이라도 완벽한 촬영이 되기 전까지 그야말로 인정사정 없이 연기를 주문합니다. 언젠가는 똑같은 장면을 30번 넘게 연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 ‘불후의 명작’의 심광진 감독님은 부드럽고 섬세한 성격대로 현장을 차분하게 리드해갑니다. 얼마 전 광화문 사거리에서 극중 주인공이 서러워 우는 장면을 2분정도 롱테이크로 촬영했는데 저는 꽤 잘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커∼ 엇.”
“심감독님, 어땠어요?”
“(약간 뜸을 들이다 조용하게) 잘하셨어요. 그런데 한번 더 할까요?”
안 좋았다는 걸 의미하는 심광진감독식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눈에 물파스를 발라가며 안 나오는 눈물을 짜내며 3시간동안 울어야했습니다.
배우는 일의 특성상 늘 감독에게 연기를 확인받아야 합니다. 그런 확인이 거듭돼 영화가 만들어지면 저는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 또 다시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영화 어땠어요?” “저 어땠어요?”
우선 주위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부족해 신문, 영화전문지, 인터넷 등을 찾아다니며 일반 관객이나 전문가의 평을 꼼꼼히 봅니다. 잘 써준 평을 보면 보람을 얻고 기분 좋지만 의도를 몰라주거나 평가를 잘 안 해준 글을 볼 때면 지적이 맞더라도 유쾌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꼬마녀석은 가끔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저에게 가져옵니다.
“아빠! 이거 내가 그렸어요.”
이 녀석의 얼굴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별로 잘하지 못한 건 아예 가져오지도 않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칭찬을 좋아하기는 똑같은가 봅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잘한 일에 대해서는 확인받고 싶어하면서도 자기의 그릇된 언행에 대해 확인받는 건 그리 즐겁워하지 않습니다. 시험 보기 전날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은 무엇을 빠뜨렸나 책을 보며 확인하지만 공부를 안한 학생일수록 책을 펼쳐 보질 않아 더욱 시험을 망치게 됩니다.
비록 공부가 부족했더라도 그 확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책을 펼쳤다면 시험 성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텐데도 말입니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귀에 쓴 얘기가 보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귀를 열어 놓을수록 인생도 열린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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