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프랑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화백(71)을 언젠가 만나면 “도대체 왜 30년가량 물방울만 그리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가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생애 73번째 전시회(17∼30일)를 갖는 것을 계기로 최근 기자들을 만났을 때 잽싸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선문답과도 같았다.
“35년 동안 외국에 나가서 생활했지요. 어쩔 수 없이 이질감을 느꼈고…. 크게는 그림을 그려오는 동안 쌓은 조형적 체험과 살아온 인생 체험과의 만남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농부가 꾸역꾸역 밭에서 일하듯, 스님이 염불하듯, 어린애가 물장난하듯 그린 것이지요. 꾀꼬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냥 내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서울대미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 앵포르멜 운동의 1세대로 65년 고국을 떠나 런던과 미국 뉴욕을 거쳐 69년 이후 프랑스에 살고 있다. 그가 마굿간 화실에서 기거하고 있을 때 만난 프랑스 처녀는 이 신비한 동양화가에 매료돼 반려가 됐고, 두 아들은 철학자와 작곡가로 장성했다.
그가 물방울 하나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72년. 그동안 그의 물방울도 많은 변천을 겪었다.
“초기에는 신문지 위에 되도록 사람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스프레이로 물방울을 그렸습니다. 80년대초부터 물방울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전통적 유화기법으로 그렸고 90년대 부터는 천자문을 화면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빨강 초록색도 써봤지만 노란색 계통의 색상으로 물방울을 그리는게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더군요.”
‘물방울 작가’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그가 그린 물방울 작품은 모두 몇점이나 될까.
“한 전람회에 30점만 쳐도 이럭저럭 2000여점이 되는군요. 물방울 그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갑니다. 1000호 같으면 3000방울의 물방울이 들어가거든요. 참선하는 것이나 물방울 그리는 것이나 본질은 똑같지요. 저는 제 모든 희로애락을 물방울에 녹여 없앴습니다. 죽기전에 물감과 점만으로 된 작품을 몇십점 해보고 싶습니다.”
화랑 경기가 좋지 않고 그림 값도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그는 전시를 주관한 화랑주인에게 “몸도 좋지 않아 얼마나 더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림을 적게 팔더라도 작품 값은 올리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오래전 화랑주인이 매입한 뒤 파리 그의 자택에 보관해오던 대작이 비에 젖자 “이 그림은 나와 하느님의 합작품이니 더욱 수장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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