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들을 보면 "참 재미난 소재도 많구나" 싶습니다. 어디서 그런 소재를 찾아내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얼마 전 일본 신문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남자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나와 있습니다. 남자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라…. 스포츠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지 않습니까.
제목은 (가제), 감독은 야구치 시노부입니다. '돈에 환장한 여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영화화한, 우리 나라에선 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바 있는 의 바로 그 감독입니다. 제작은 수오 마사유키가 설립한 영화사 알타미라 픽처스. 수오 마사유키는 등 줄곧 기발한 소재의 영화만 만들어온 감독입니다. 제작자와 감독의 성향이 이러니, 이 영화의 소재도 기발할 수밖에요.
소재가 기발하다 해서 스토리 전개까지 기발한 건 아닙니다.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이번 영화만 하더라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매력에 빠진 남자 고등학생들이 주위의 편견과 무관심을 딛고 일어서 결국 성공한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지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란 소재만 특이할 뿐이지 내용은 다른 영화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셈입니다.
요즘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 문화는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만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소재는 다 독특합니다. 초밥 맛있게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치는 주인공이 있는가 하면 바다 낚시에 청춘을 건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심지어 처럼 수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라면 꿈도 꾸지 못할 소재의 만화가 등장하고 또 인기를 끌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 구조가 아주 독특한 만화는 등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판타지 소설도 형편은 다를 게 별로 없습니다. 이쪽 방면에서 이름을 떨치는 일본 작가 가운데 기쿠치 히데유키란 사람이 있습니다. 의 가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던 도 이 사람의 원작을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엄청난 다작 작가로 유명합니다. 한 달에 책을 네 권(옛날 작품 리메이크까지 포함해서)이나 출간한 적도 있습니다. 작품을 쓸 때 이 사람이 가장 중점을 두는 작업이 뭔고 하니 바로 캐릭터를 만드는 일입니다. 캐릭터를 잡아내면 스토리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니 상대적으로 내용 만들기는 뒷전입니다. 그는 "색다르고 매력적인 캐릭터만 잡아내면 책 한 권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모부에 들어가게 된 대학생'이나 '영업 직원 출신의 형사' 또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고 싶어하는 남자 고등학생'이란 캐릭터만 잡아내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시간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건 건 소재는 색다르지만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좀 다릅니다. 캐릭터보다는 좋은 스토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이랬더니 마침 그때 악당이 저랬더라, 하는 식의 스토리를 캐릭터보다 먼저 정합니다. 요즘 들어 이런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도시락 케이스에 먼저 신경 쓴다면 우린 도시락의 내용물에 더 신경을 쓴다고나 할까요. 제대로 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입니다. 물론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들이대는 잣대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요.
다만 질보다 양이 더 우선시 되는 요즘 대중 문화 풍토에서 일본 쪽이 좀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가져봅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따를 자가 없다는 할리우드에서도 제작자가 작품을 고를 때 '20자 이내로 줄인 줄거리를 들어보고' 제작 유무를 결정한다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캐릭터가 뛰어난 대중 상품은 '영화 뒤의 산업', 다시 말해 캐릭터 사업을 할 때도 유리합니다. 주인공 인형을 만들어 팔 수도 있으니까요. 캐릭터를 중요시하는 일본 대중 문화. 사업가라면 타산지석으로 삼아볼 만합니다.
김유준(영화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