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산불 그 후
1988년 지난 세기 최대의 산불이 발생한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취재한 느낌은 자연의 순환 메커니즘을 인간이 관리할 수 있다고 믿고 간섭하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공원 남쪽 게이트에 들어서자 도로 양 옆으로 20∼30m 크기의 불에 탄 소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루이스리버 캐년,공원 서쪽의 간헐온천(가이저)으로 유명한 올드 페이스풀을 거쳐 매디슨 리버와 기본 리버 주변을 둘러보니 동서남북 산불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화마가 삼켜버린 옐로우스톤은 죽어버린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되살아나고 있었다. 불에 탄 공원 곳곳에는 아기 소나무가 1m 가량의 키를 뽐내며 힘차게 자라고 있었으며 버팔로 엘크(사슴의 일종) 늑대 등이 공원 도로변까지 나와 노는 광경도 쉽게 목격됐다. 또 허가를 받아 한가로이 플라잉 낚시(하루 송어 2마리)를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공원 곳곳에 산불 및 복원에 대한 설명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처럼 산불의 위험성을 알리는 내용은 단 한건도 없었다. ‘산불은 자연현상이다. 불이 난뒤 벌레가 생기고 이를 잡아먹는 딱따구리와 새로운 종류의 새가 몰려든다. 화재로 토양의 영양분이 많아져 새로운 싹이 돋아나 목초지가 형성되고 나아가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위복(轉化爲福)이라는 말인가.
채릴 매튜 공원 대변인(여)은 “국립공원에서 산불이 나면 그냥 타도록 놔둔다. 또 꺼진 뒤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자연에 맡겨 놓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불에 탄 공원을 방치해 두는 것 같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특히 산사태가 우려되는 곳에는 사방 공사를 하고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 리버를 지나다 보니 경사 60∼70도의 계곡은 듬성 듬성 불탄 나무만이 토양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어서 비가 오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매튜씨는 “산사태도 자연현상의 일종”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공원측은 불에 타 죽은 나무는 2008년까지 모두 쓰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무가 쓰러지면 썩어 척박한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많은 초목이 자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미 쓰러진 나무가 썩은 채 방치돼 있고 그 자리에 푸른 초목이 자라고 엘크 가족이 한가로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인공조림 논란은 없었을까. 미국에서 국립공원은 자연의 순환 논리에 그대로 맡기자는데 학자는 물론 국민에게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공원에서 만난 몬태나 주립대 학생 리안 하니시씨는 일부라도 인위적으로 산불 복원을 할 필요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산불은 자연 현상이므로 인간이 간섭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산불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다. 산림청이 관장하는 국유림의 경우에는 산림자원 보전 차원에서 불이 나면 즉시 끄고 또 경제성이 있는 나무를 심는다.
또 겉으로는 방치하고 있는듯 하지만 공원측과 생태조사단(YES)은 면밀한 생태계 조사를 벌이고 있다. 돈 데스페이드 몬태나주립대 교수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는 불에 잘 타는 라지폴 파인이 많다. 이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려면 250∼300년이 걸린다”면서 “이 산불이 1700년대 이후 최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300년 주기로 자연적으로 큰 산불이 발생하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공원 서쪽 게이트로 나오는 길 오른편은 불에 탄 나무로 대평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 평원은 250∼300년 뒤에는 다시 숲으로 가득 메워질 것이다. 또 그때쯤 1988년 산불에 버금가는 거대한 산불이 발생,이 공원을 삼킬 것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이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한해 400만명의 탐방객이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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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산불은…
1988년 4,5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날씨는 예년과 비슷했다. 비도 적당히 왔고 습도도 평년 수준이었다. 곳곳에서 번개에 의한 불이 발생했지만 공원측은 1972년 이후 공원 관리 차원에서 채택해 온 ‘그냥 타도록 놔주는 정책(let it burn policy)’에 따라 진화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6월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 9월까지 단 한방울의 비도 오지 않았고 1872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최악의 가뭄이 이어졌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고 불은 하루 9∼16㎞의 속도(어떤 불은 단 3시간만에 22㎞)로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과학자와 공원 관리자 및 정책 담당자 사이에 불을 꺼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격렬하게 붙었다. 공원측과 게리 멀린스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 등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인간에게 30년이 한 세대인 것처럼 자연은의 경우 300년이 한 세대라는 관점에서 옐로우스톤 화재를 하늘에 맡기자고 주장했다.
불길을 잡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 땅을 뒤엎는 등 인위적으로 화재를 진압하려 하다간 화재후 흉측하게 파헤쳐진 지역이 오히려 생태계의 복원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반면 주정부와 산림청 관계자 등은 화재를 자연현상이라기 보다는 자연의 파괴로 받아들였다. 결국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2만5000여명의 소방관과 군인,117대의 비행기,수백대의 헬리콥터가 동원됐다. 투입된 예산만 1억2000만달러.
그러나 강원 동해안 산불 피해면적의 20여배가 넘는 약 120만 에이커(4856㎢·국유림 포함)를 태운 뒤에야 9월 ‘눈’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불길이 잡히기 시작했다. 공원의 36%가 불타 사라졌다. 완전 진화된 것은 그해 11월18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화재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화재 생태학이 부상하고 있다. 멀린스교수는 “고령화된 수목은 내한성이 약해져 겨울에 고사하는 경우가 많고 병충해에 쉽게 노출되며 다른 지역으로 병원균과 해충을 전파할 수 있다”면서 “옐로우스톤 화재는 생태계의 재생이란 측면에서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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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불 복구 어떻게 …
올 3월 발생한 동해안 산불 복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산림청 환경부 강원도 학계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산불피해 공동조사단은 자연복원과 인공조림을 병행한다는 방침 아래 11월말까지 5개년 복원계획을 확정할 예정.
산림청 윤영균(尹英均)산림자원과장은 “전체 피해 면적 2만3448㏊ 중 56.3%는 자연 복원에 맡기고 43.7%는 경제수 조림,경관림 조성,송이복원 조림 등으로 복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산불 피해 지역이 국유림 보다 사유림이 더 많은데 사유림 지역은 산주의 의견을 수용하는 쪽으로 복구 계획을 결정할 것이라는 설명. 당장 내년에는 132억원을 들여 도로변 경관 조림부터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산림청 관계자나 산림자원학 전문가들은 대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임원연구원 신준환(辛俊煥·산림생태학 박사)생태과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토질에 유기물이 적어 그냥 놔둘 경우 민둥산으로 전락할 수 있고 또 풀이 나고 나무가 자라더라도 잡목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토가 좁고 민가 등이 인접해 안전성 문제도 우려되기 때문에 미국의 국립공원처럼 자연 복원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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