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슬아슬 합니다.”
지난 4일 국제철강협회(IISI) 정기총회가 열린 호주 멜버른. 포항제철 유상부(劉常夫)회장은 민영화 이후 포철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아슬아슬하다는 것일까. 적지않은 설명이 있었지만 우선 세계1위인 포철이 이제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강력한 경쟁업체인 일본 신일철의 거센 도전에 발가벗고 마주서야 한다는 뜻으로 요약됐다.
포철은 공교롭게도 유회장이 취임한 98년 3월 이후 세계 1위의 자리를 확보했다. 그는 평소 “최근 2년 동안 포철이 상당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챔피언을 차지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1위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그의 아슬아슬하다는 말은 그러나 다소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회사와 개인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유회장을 만난 4일은 포철이 정부의 지분을 모두 처분한 바로 다음날. 유회장은 이 자리에서“이제는 기업 사냥꾼을 조심해야한다”고 말했다. 경영권에 대해서도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사실 포철은세계 유수의 철강회사나 국내 기업이 경영권에 위협을 주는 경우에 대비한 다각적인 차단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특정 세력이 불순한 의도로 주식매집을 시작하면 막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환우선주를 발행합니다. 신일철등 기존 우호주주도 경영권 보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영화된 상황에서 국민기업 포철의 위상을 장담만은 할 수 없다. 유회장에게 국민기업 포철이 경쟁력있는 안전한 기업으로 자리하도록 해야 하는 짐이 하나 더 지원진 셈이다.
아슬아슬하다는 말을 유회장 개인으로 좁혀서 해석하면최근 소문(경영진 교체)과 무관치 않다.
이에대해 유회장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근거가 없습니다” 물론 자신에 대한 문제이어서 단정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나돌고 있는 소문만큼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여권의 고위 인사가 차기 포철 회장에 내정됐다고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사실이 아닙니다.정치와 초연하다는 포철의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아슬아슬하다”는 유회장의 말은 “민영화된 포철을 더욱 다지겠다”는 각오로 발전시켜도 비약은 아닐 듯 싶다. “기업의 가치는 국가의 신용등급과 무관치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데 따른 국가 위험도를 피할수 없습니다” 포철은 99년부터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우리나라 신용 등급과 같은 수준의 평가를 받아왔다. 이같은 국제적 신뢰도를 지켜 나가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그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고 지켜나간다”는 말로 민영화된 포철의 최고 경영자 로서 각오를 밝혔다. 25년간 포철에서 근무한 유회장의 트레이드마크는원칙과 뚝심이다. 그는 지난해 소위 고위층 친인척이 직접 찾아와 납품업자를 봐달라고 부탁했으나 그 자리에서 거절한 것으로 최근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또 포철회장이 되기까지 박태준(朴泰俊)전 총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나 박 전 총리의 청탁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유회장은 민영화된 포철을 국민기업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있다.
2년 6개월동안 세후 순이익 4조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73년과 97년까지 포철의 전체 세후 순이익과 맞먹는 규모. 이는 물론 유회장의 힘만은 아니다.
전체적인 시장상황도 맞아떨어졌는데 특히 통신주가가 한창 뜰 때 신세기통신 지분과 SK 텔레콤 지분을 맞교환해1조원 이상의 세후 특별이익을 거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임원들을 불러 놓고 민영화의 의의를 다시 강조했다.“정부의 민영화는 주식 매각 대금을 국고로 환수해 국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철의 민영화는 국제 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있습니다. 분발합시다.”
민영화와 함께 이제 포철에 대한 정부의 사실상 보호와 국민적 성원은 전혀 달라지게 됐다. 포철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계속 자리매김할 것인지, 유회장이 ‘철강 전문인’으로의 명성을 이어갈 것인지. 유회장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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