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그대에게 가는 길' 박재삼 옮김/다빈치 펴냄/205쪽 9000원▼
"나의 남덕군에게, 당신의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아고리군은 머릿속과 눈이 차츰 맑아져서, 자신이 넘치고 넘쳐서 번쩍번쩍 빛나는 머리와 안광으로 제작, 제작-표현 또 표현을 하고 있다오. 한없이 살뜰하고 한없이 상냥한 오직 나만의 천사여, 더더욱 힘을 내어, 더욱더 올차게 버티어 주시오"
"나의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고리, 당신의 힘찬 애정을 전신에 느껴, 남덕은 마냥 기뻐서 가슴이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는 나는 온 세계의 누구보다도 가장 행복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남덕과 아고리? 한국의 천재화가 이중섭과 그의 일본인 아내 이남덕은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이중섭은 '턱이 길다'는 뜻의 '아고리'라는 별명을 일본유학시절 얻었다. 이남덕은 이중섭이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의 처자를 조선땅으로 불러 혼인하면서 붙여준 이름이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
둘은 1953년부터 이중섭이 죽은 1956년까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았다. 중섭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무능한 가장이었고, 남덕 역시 병이 깊어 궁핍한 이 땅에서 살수 없었다.
가난을 못이겨 둘이 생이별을 한 때부터, 정확히 말해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둘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그리움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이 서간집은 중섭과 남덕이 주고받은 일본어 편지들을 1997년 작고한 시인 박재삼씨가 옮긴 것. 중섭의 편지야 그리 새로울게 없지만, 남덕이 중섭에게 보낸 가슴절절한 편지들은 새롭기도 하고, 또 가슴 한편을 아리게도 한다.
이 서간집은 중섭과 그의 아내 남덕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그러나 사료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편지를 해석하듯 읽는건 정말 무미건조한 일이다. 중섭과 남덕의 서로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그저 좇아가는 것에 만족하자. 그것만으로도 천재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을 슬쩍 들여다 보기엔 충분하다.
최용석duck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