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에서 팔다리가 모두 없는 장애인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24)가 쓴 ‘오체불만족’이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끈 데 이어 요즘에는 맹학교 여고생 이노우에 미유키(井上美由紀)가 쓴 ‘살아 있어요, 15살’이라는 책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체중 500g으로 태어나 미숙아 망막증으로 시력을 잃은 이노우에가 어떻게 장애를 극복해왔는지를 수기형식으로 정리한 눈물겨운 이야기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음의 눈’을 환하게 뜬 그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진 것. 그가 남긴 “태어나길 잘했다”는 말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지금까지 33만부가 넘게 팔렸고 편지도 1000통이 넘게 쇄도했다.
이같은 감동 스토리는 18일 개막한 시드니 장애인올림픽에서도 줄을 잇고 있다. NHK는 하루에 몇 번씩 시드니특별방송을 하면서 경기결과와 메달리스트를 소개했다. 신문들도 1면과 스포츠면 사회면 주요기사로 정상인의 올림픽보다 더 애절하고 감동적인 사연을 전했다.
대회 이틀째인 19일 유도로 일본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시각장애인 후지모토 사토시(藤本聰·25). 선천성 시신경 이상으로 오른쪽 눈에만 0.06의 시력이 남아 있다. “눈이 두 개면 TV도 두 개로 보이는 줄 알았다”는 그는 라면집을 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다섯살 때부터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상인들에게 수없이 내던져지면서 ‘마음의 눈’으로 상대방의 힘을 확인하는 훈련을 거듭해 온 끝에 애틀랜타올림픽에 이어 2연패를 거뒀다.
대회 3일째에는 나리타 마유미(成田眞由美·30)가 수영여자 150m(지체부자유)에서 2분53초73의 세계 신기록을 내며 우승했다. 움직이지 않는 하반신을 끌고 양팔로만 헤엄친 그는 팔이 퉁퉁 부어서 나중에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서 팔을 치켜드는 우승포즈를 취할 힘도 없었다. 그는 단체전 등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세워 4관왕에 올랐다.
가장 심금을 울린 선수는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육상경기에서 의족을 달고 출전한 고조 아키히로(古城曉博·18). 다섯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허벅지를 절단한 그는 최근 왼쪽발목마저 부러졌지만 “스탠드의 열기를 꼭 느끼고 싶다”며 출전했다. 앙상한 철제의족을 드러낸 채 전력질주하는 모습은 정상인의 어느 경기보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경기 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세계 무대에서 뛰게 돼 기뻤다”며 오히려 주위를 안심시켰다.
24일까지 일본의 종합성적은 금메달 6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4개. 이에 비하면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5개, 동메달 4개로 훨씬 우수한 성적이다. 감동의 스토리도 일본보다 적을 리가 없지만 장애인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장애를 힘겹게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이뤄내고도 허탈감에 빠져 있을 한국 장애인 선수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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