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조금은 우습지만,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좀 유별난 것 같다. 우리는 자주 무한한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들뜨지만(한민족의 우수성!), 가끔씩은 자기비하의 나락으로 떨어져 "역시 한국사람들은 안돼" 식의 자조적인 쓴웃음을 짓곤 한다. 이른바 '추한 한국인'. 그 실체를 확인할 기회는 없으나 할리우드 영화는 가끔씩 그 흔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처럼 약소(?)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외국영화를 보면서 가장 경이로운 순간 중 하나는 영화 속에 한국어가 등장하는 경우다. 의 참치 캔을 비롯해 의 보석강도 장면에 등장하는 경찰차(문짝에 한국어로 '경찰'이라고 써 있다), 에 나왔던 '부산상회'라는 상호 등을 만날 때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런 작은 즐거움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 혹은 '인종'으로서 한국인이 등장할 때는 사태가 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93)이다. '한국인 비하'라는 이유로 3년간 수입도 하지 못했던 이 영화의 주제는 한국인 비하가 아니라, 백인 중산층 도시인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감이다.
주인공 디펜서는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양면공격을 받고 있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한 그가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폭력. 뭔가를 때려부수고 싶어하는 그 앞에 우연히 한국인이 있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은 미국사회를 좀먹는 '돈만 밝히는 존재'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영화가 (89). 스파이크 리는 이 영화에서 예상외로 흑인과 백인의 갈등을 다루지 않는다. 흑인들은 피자집을 경영하는 이탈리아인에게 "너희들은 흑인에게 피자를 팔아 먹고살고 있다"고 항의하고, 아일랜드계 경찰에 의해 흑인 하나가 죽자 폭동이 일어난다. 이 와중에 그들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으로 몰려가 '눈 쫙 째진' 한국인에게 "니들도 우리에게 물건 팔아 잘 먹고 잘 산다"는 식의 비난을 퍼붓는다. 당황한 한국인은 "난 흑인이다!"고 말하며 흑인들은 껄껄 웃은 뒤 돌아간다.
가 비판하는 지점은 한국인의 탐욕스러움이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인은 영어도 잘 못하면서 온갖 생필품 가게를 독점하고 돈을 긁어가는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서 슈퍼마켓 점원 소니 역을 맡은 스티브 박이다. 그는 이후 (96)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옛 일본인 대학 친구 야나기타 역으로 출연했던 나름대로 잘 나가는 한국계 배우인데,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배우들에게서 '부정적인 아시아인'의 상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후 성명서를 발표해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다는 반성을 했고, 아시아계 배우들의 결속을 주장하기도 했다.
(95)는 한국의 배가 미 전역에 퍼져있는 바이러스의 진원지라고 설명한다. 이건 '어글리 코리안'이라기 보다 '더티 코리안'에 가깝다.
프랑스 영화에서도 어글리 코리안은 드러난다. (98)의 한 장면. 잠복근무중인 형사는 이상한 택시 한 대를 발견한다. 후미진 골목, 택시 운전사는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나온다. 두 한국인은 24시간을 반으로 쪼개 교대로 운전하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프랑스 형사는 "쟤네 나라가 요즘 힘들대"라며 빈정댄다(당시는 IMF 상황이었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뤽 베송이 의 한국 개봉 당시 필름을 자른 것에 대한 분풀이로 이런 장면을 삽입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과히 기분 좋지 않은 영화들 중에 조금 유별난 장면이 있다. 존 랜디스의 (92)에서 보스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전자업에 큰 몫을 하지. 그들은 어떤 아이디어든 놓치지 않아. 그들은 상상을 초월해." 여기까지는 한국인의 우수성에 대한 격찬(?)이었지만, 갑자기 보스는 한국제 토스터를 들어 완전히 박살내며 배신자를 겁준다.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woody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