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세계정치경제-세계화의 허구와 그 대안 모색' 임광빈 지음/들녘 펴냄/400쪽 1만8000원▼
ASEM이 지난 21일 유럽-아시아 대륙간 우호적인 협력 관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폐막됐다. 유럽의 對北관계 개선이라는 실질적인 합의도 끌어냈다. 양대륙의 정상들은 마침 '노벨상 특수'를 맞은 한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시에 세계 평화에도 기여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였을까? ASEM이 진행중이던 서울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각국 NGO대표들과 우리나라의 양대노총등이 연대한 시민단체들은 ASEM을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유럽과 아시아의 파괴적 행동"이라며 규탄했다.
이렇듯 ASEM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상반되게 벌어진 상황은 세계정치경제의 위기설을 뒷받침할 만하다.
이 책은 세계화의 과정에 놓인 전지구적 정치경제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고, 위기에서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주제를 담고 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기대어, 저자는 세계 정치경제체제 위기의 본질을 전지구적 자본주의로 보고 있다. 자유주의 이후의 '신자유주의'나 현실 정치경제학에서 내세우는 '힘의 논리'는 이러한 사태를 감추는 측면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화의 이데올로기는 자본-노동간 그리고 남과 북간의 갈등이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계 경제의 주기적 공황국면이라고 설명되는 '콘트라티예프 주기'는 반복되고 있고, 16세기 이후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한 투쟁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전쟁 이후로 미국의 패권주의는 점점 유럽과 일본 사이에서 삼각화되고 있으며, 세계 경제는 콘트라티예프 하강 국면을 맞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의 허구성이다. 초국가적 기업과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시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전체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으로 봤을 때, 현재 상황은 세계 자본주의 시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자본주의적 모순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자본과 노동의 갈등 및 핵심-주변 간의 구체적인 불균등 발전은 여전히 관찰되고 있다. 모순을 감추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지구화의 대안은 전지구적인 운동세력을 고려해볼 때 마련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세계 정치경제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거시감각을 키워준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이, 우리에게 맞지 않는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령 '무한경쟁'이니 하는 살벌한 어투일 텐데, 이 책은 왜 세계화에서 그런 '감(感)'을 받아왔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는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섬세한 분석이 적고, 대부분의 방법론을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서 그대로 복사해 왔다는 인상을 준다. 내용없이 반복되는 인용도 지겹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한경쟁의 궤도에서 저자가 말한 자본주의 모순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시민들은 어떤 대안으로 세계화에 저항해야 할지 막막해질 뿐이다.
안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