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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정치권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 불똥

입력 | 2000-10-30 18:50:00


2002년부터 사용되는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정치권으로 비화하고 있다. 교과서 내용의 수정과 합격여부를 판단하는 검정과정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외압 공방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30일 “외교관 출신의 한 교과서 심의위원이 특정교과서의 불합격을 요청하며 다른 심의위원에게 보낸 문서는 외무성 내부 문건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외무성이 교과서 심의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못마땅해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특정한 교과서를 옹호한 것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일본의 침략사실을 전면부정하고 식민지배를 옹호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해 신청한 것.

외교관 출신의 한 심의위원은 △한국합병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한국을 자극할 수 있다 △중일전쟁에 끌려들어갔다는 기술은 침략 사실에 반한다 △도쿄(東京)전범재판을 부정하는 것은 일본이 판결결과를 받아들인 사실에 반한다는 점 등을 들어 다른 심의위원에게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한 교과서는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교과서를 인정하면 일본은 독일의 신나치주의자와 같은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무성이 이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역사 왜곡에 대한 한국 중국 등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일본 정부가 사죄의사를 표시한 95년 ‘무라야마(村山)총리 담화’의 정신에서 후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민당 내 보수성향의 의원들은 “심의기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할 문제에 외압이 작용하고 있다”며 문부성에 해당 전직 외교관출신 심의위원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또 교과서 심의위원도 국회에서 승인을 받아 위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당의 이 같은 지적 때문에 27일에 열릴 예정이던 문부성의 교과서 심의위원회는 연기됐다. 문부성은 ‘왜곡없는 역사교과서’보다 ‘정치권 외압’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이 사안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동조하는 보수세력과 역사기술의 후퇴를 걱정하는 외무성 등 일부 비판세력과의 싸움이다. 따라서 이 교과서의 합격여부는 일본 지도층의 역사인식을 재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이제껏 지켜보기만 해온 주일대사관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최상룡(崔相龍)주일대사는 27일 한 강연회에서 “역사는 모래 위에 쓴 글씨처럼 쉽게 지울 수 없다”며 “일본은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고 역사 왜곡 경향을 비판했다.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