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근엄해 보이는 신사나 정숙한 것 같은 숙녀에게도―최소한 한두 번의 호기심으로라도―마스터베이션의 경험은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단정짓기가 조금 힘들기는 하다. 마스터베이션과 마스터베이션 아닌 것과의 경계를 확연히 나눌 수 있는가,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과 사정(ejaculation)의 차이는 무엇인가, 남성과 여성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 따지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마스터베이션의 존재론과 인식론은 각 개인들의 성적 관점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엄숙한 제의처럼 심각하게 다룬 영화부터 일상사의 하나처럼 자연스럽게 다룬 영화까지, 수음(手淫)에 대한 영화적 접근은 천차만별이다.
먼저 유쾌한 마스터베이션을 꼽자면 단연 (99)다. 왕성한 혈기를 '거시기'에 쏟아 부으며 온종일 섹스만 생각하는 10대 남자아이들. 주인공 지미도 예외는 아니며, 부모님의 시선을 피해 틈만 나면 마스터베이션을 시도한다. 하지만 녀석은 초보였고, 할 때마다 부모님에게 발각되고 만다. 다행인 것은 지미의 아버지가 매우 이해심이 넓은(?) 분이라는 것. 아들과 함께 도색잡지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산산조각이 난 애플파이를 가운데 놓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분'이 있었기에 지미는 바른 청년으로 성장했다. 에서 자효(김래원)가 보여주는 마스터베이션은 왜 이렇게 처절한가! 조금은 애처롭게까지 느껴진다.
이런 청년들에 비하면 (84)의 주인공 버디(매튜 모딘)의 몽정은 조금 남다르다. 한참 성적으로 왕성한 또래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버디는 자신을 새와 동일시하는, 한마디로 '새장 속에 갇힌 아이'다. 어느 날 밤 꾸게 된 새의 악몽. 깨어난 버디는 축축해진 아랫도리를 발견한다.
청소년들의 자위행위가 넘쳐나는 에너지의 분출이라면, 몇몇 어른들에게는 썩은 액체를 분출하는 행위일 뿐이다. 아벨 페라라의 (92)의 나쁜 경찰 하비 케이틀이 보여주는 변태적 마스터베이션은 선량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느 날 밤 외딴 곳에서 신호위반 차량을 적발한 그는 자동차로 다가간다. 그곳엔 '날라리'로 보이는 10대 여자 두 명이 타고 있다. 그는 딱지를 떼지 않는 대가로, 한 여자에겐 엉덩이를 보여달라 하고 한 여자에겐 오럴섹스 시늉을 하라고 하며, 마치 악을 쓰듯 '그 짓'을 한다. 그리곤 사라진다.
반면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86)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호러영화를 보며 열중하는 마스터베이션은 조금 엽기적이다.
아이들이라고 성욕이 없을 리 없다. (88)의 꼬마들은 극장 앞줄에 앉아 단체로 즐거운 손장난을 즐긴다. 이 영화의 선조는 펠리니의 (74)인데, 두 영화만 놓고 보면 이탈리아 꼬마들은 원래 그렇게 성적으로 구김살이 없나 보다.
마스터베이션의 달인을 뽑는다면―놀라운 발사력(!)을 발휘하는 의 '더러운 놈'도 있지만―(83)의 레오나드 젤리그(우디 앨런)를 꼽을 수 있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지니고 항상 주위 상황에 맞추어 변신을 꾀하는 젤리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최면에 걸린 젤리그. 그는 자신이 정신과 의사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빨리 가봐야 해요…오늘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중요한 수업이 있는데…내가 늦으면 먼저들 시작하는데…." 그는 마스터베이션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며, '마스터베이션'은 우디 앨런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이야기가 너무 남근 중심적으로 흐르는 걸까? 여성의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엠마누엘 부인의 고혹적 자태도 있긴 하지만―단연 (98)이다. 쌍둥이 남매 데이비드와 제니퍼가 빨려 들어간 시트콤 '플레전트빌'의 흑백 마을. 사람들은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두가 '바른 생활' 사람들이다. 이때 제니퍼는 엄마(조안 앨런)에게 자위행위의 은밀한 쾌락을 가르쳐준다. 나이 40이 넘도록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섬세한 손놀림. 마치 금단의 땅에 들어서듯, 욕조에 누워 첫 마스터베이션을 시도하던 엄마는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에 비명을 지르고, 집 앞 나무는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갑자기 불길에 휩싸인다. 그리고 온통 흑백뿐인 세계에서 엄마는 '컬러 인간'이 된다.
인간의 욕구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 은 마스터베이션이라는 상징을 통해, 육체와 정신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듯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흑백논리에 빠져 있는 인간들에게 '계몽주의'의 화려한 원색을 제공하는, 가장 심오한 '마스터베이션 무비'다.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 woody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