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일본의 정치인, 관료, 재계 모두가 눈앞의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변화를 꺼려하는 것을 개탄한 일본의 한 저명한 경제평론가가 최근 어느 일본 경제지에 실은 글의 제목이다.
이 글에서 그 경제평론가는 일본의 자기개혁은 절망적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IMF를 불러들여 ‘IMF독재’에 의한 외압으로 일본이 필요로 하는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물론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며, 세계 최고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일본이 IMF 긴급구제금융을 통한 관리체제에 들어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 일본만 유일하게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도록 제자리걸음한 일본경제를 되살리는 길은 오직 분야별 개혁과 구조조정의 가속화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으로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말에 맞은 환란 이후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평상시에는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의 기업 금융 노사 공공 부문의 구조조정 노력을 경주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여기에는 당초 정부의 강한 개혁의지와 국민 모두의 고조된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환란이라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우리에게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를 IMF 관리체제 하에 놓이게 한 ‘행운’을 맞게 됐기 때문에 이 정도의 구조조정이 가능했다는 것을 지적한 일본경제 평론가와 함께 우리 스스로 이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 정도의 구조조정만으로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안정과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현재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증권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금융부문 등 경제내부에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한 영(零)에 가까운 금리 등 거시경제정책 수단에 의한 경제활성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또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IMF독재’에 의한 강한 외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서야 할 정도로 필요한 경제구조조정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한국은 IMF 경제위기를 역이용, 족벌경영 타파와 금융구조 개편, 노동시장 개혁 등 그간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 경기회복과 함께 이익집단들의 ‘제몫 챙기기’로 그 호기를 놓치고 있다”는 어느 외국 연구기관의 한국평가에 우리 모두 주목해야 한다.
경제구조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현재 문제되고 있는 금융기관과 부실기업들의 퇴출 문제를 투명하고 공정한 원칙에 의해 하루 속히 마무리함과 동시에, 적어도 앞으로 5년 내지 10년 동안 우리 경제가 지향해 나가야 할 비전과 그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앞으로는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수시로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에 의해 이룩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현재의 관료 임용체제를 대폭 개혁해서 국내외 민간전문가들을 폭넓게 활용해야 한다.
기업 특히 재벌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에 진정으로 앞장서야 한다. 지난 10∼20여년 동안 스스로 뼈를 깎는 각종 경영개혁 노력을 경주해온 결과 미국경제가 현재 사상 최장기 호황을 누릴 수 있도록 뒷받침한 미국의 기업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의연한 결의가 있어야 한다. 근로자들도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적대적이고 경직된 노사풍토를 이 땅에 조성하는 것은 스스로의 일자리를 외국으로 쫓아버리고 고용기회를 포기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상 현재 우리는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의 위기관리 능력과 경제성장 잠재력을 쉬지 않고 저울질하고 있는 국제금융인과 투자자들에게 우리의 진정한 저력을 과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공 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