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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패러디로 잘 버무린 휴먼 코미디

입력 | 2000-11-03 13:37:00


라자 고스넬 감독의 에서 백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71년 를 기점으로 발화한 블랙플로이테이션(Blaxploitation 흑인중심영화)의 정신을 적극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원래 블랙플로이테이션은 백인 대신 흑인을 영웅으로 내세운 누아르 장르인데, 이 영화는 흑인영웅을 완전히 코미디 스타로 둔갑시켜 버렸다. 덕분에 는 비슷한 소재의 코미디 영화인 의 '흑인 버전'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이 영화가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와 비교되는 이유는 또 있다. 두 영화 모두 영화 속에서 기상천외한 분장쇼를 선보이고 있으며, 그들의 분장이 모두 아카데미 분장상 수상자인 그레그 케넘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라자 고스넬 감독 역시 의 편집기사 출신.

그러나 두 주인공이 남장여자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의 로빈 윌리엄스는 부인과 이혼한 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여성 파출부로 변신한 것이고, 의 마틴 로렌스는 은행강도를 잡기 위해 뚱보 할머니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FBI인 말콤 터너(마틴 로렌스)는 변장에 능한 수사관. 그는 영화 초반 아시아 남자로 변신해 쿵푸 액션을 선보이더니 조금 뒤엔 아예 요란한 방귀와 푸짐한 배설물을 쏟아내는 엽기적인 뚱보 할머니로 변신한다.

이렇듯 말콤이 엽기적인 뚱보 할머니로 변신하게 된 사연은 좀 복잡하다. 은행강도의 옛 애인이 할머니 집으로 도주하리란 걸 직감적으로 눈치챈 말콤은 먼저 할머니 옆집으로 이사해 동네 아주머니들과 친분을 쌓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할머니 집에 도청장치와 감시 카메라를 설치할 생각 외에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의 갑작스런 여행이다. 말콤의 예상대로 은행강도의 옛 애인 셰리(나이어 롱)는 할머니 집으로 피신을 오는데, 정작 할머니 집엔 할머니가 없다. 할머니는 몸이 아픈 친구를 간병하기 위해 이미 장거리 여행을 떠난 후. 얼떨결에 할머니 목소리를 흉내내 셰리의 전화를 받은 말콤은 뚱보 할머니로 위장해 그녀와 가까워진다.

장르의 규칙을 위반할 생각이 전혀 없는 이 영화는 요란한 분장 쇼와 더불어 "진실만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는 따뜻한 주제까지 끼워 넣는다. 거기에 덧붙여진 사랑은 황당하지만 귀엽고 산뜻하다.

분장을 하지 않은 나와 분장을 했을 때의 나. 이렇듯 모습이 완전히 다른 '나'는 사랑을 하는 것도 힘겹다. FBI 수사관 말콤 터너는 뚱보 할머니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정신마저 다른 사람이 되진 못했다. 뚱보 할머니의 '몸'으로 조카 셰리에게 '마음'을 주고 만 것. 사랑이 깊어진 말콤은 할머니의 몸과 건장한 청년의 몸을 오가며 그녀에게 접근해 은밀한 사랑을 키워간다. 갖가지 오해와 반목 끝에 '서로에게 진실해진' 그들의 사랑은 물론 해피엔드다.

는 이렇듯 익숙한 장르의 컨벤션으로 유쾌한 휴머니즘 코미디를 전해준다. 그렇다고 익숙한 설정을 보상해 줄 신선함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더러운 영화'의 계보를 잇는 엽기적인 배설물 유머, 를 패러디한 라스트신 등은 발랄하고 생기가 넘친다.

흑인들의 우상 '말콤 X'를 주인공 이름으로 차용한 것도 위트 있는 대목 중 하나. 는 전미 개봉 당시 1억2천만 달러의 메가톤급 수익을 올렸다.

황희연 benot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