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문화의 기원(Arming America:The Origins of a National Gun Culture)'/ 마이클 A 벨레사일스(Michael A Bellesiles) 지음/ 노프(Knopf)출판사
미국대통령 선거전에서는 후보의 정치적 비전을 가늠하기 위해 많은 토론이 벌어진다. 낙태와 총기규제 문제는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토론 주제다. 그 중 총기규제 문제가 각 후보의 정치적 비전을 가늠하는 이슈로 등장하는 배경에는 총을 들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해냈다는 미국인의 건국 신화가 깔려 있다.
근자에 출간된 벨레사일스의 이 책은 그런 미국의 건국 이미지가 말 그대로 하나의 신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부인할 수 없는 풍부한 증거를 통해 그는 미국의 총기문화가 건국초기는 커녕 19세기 중반에나 가서야 형성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물론 19세기 중반 이전에도 미국에는 총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그 양과 활용도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를테면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를 정복하기 시작했을 때도 주된 무기는 총이 아니라 도끼나 칼이었다. 그 이후 미국 독립전쟁 때도 총은 여전히 미미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미국 독립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묘사하는 그럴싸한 총격전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미국인들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환상을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기까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농부였으므로, 고기 조달을 위해 총을 이용한 사냥에 의존하지 않았다. 요컨대 총은 당시 미국문화에서 별 의미가 없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미국 특유의 총기문화가 생기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이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그 원인으로는 총 사용을 보다 편리하게 만든 기술 혁신이 당시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우선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즈음에 부유한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영국 젠트리 계층을 본받아 총기를 자신의 사회적 신분의 상징으로 삼기 시작했다.
더욱 결정적이었던 것은 남북 전쟁과 멕시코 전쟁이 야기한 총에 대한 수요였다. 전쟁이 끝난 뒤 퇴역병들이 총을 지닌 채 귀향하면서 총기문화는 방방곡곡에 퍼졌다. 미국대통령 선거가 행해지는 즈음, 미국의 핵심 이미지 중의 하나가 치밀한 역사연구에 의해 하나의 ‘신화’로 드러나는 체험을 하는 일은 역사가가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김연(하버드대 대학원·중국사상사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