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같은 사람이 나타나야 결혼하려고 생각하셨나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열심히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결혼이야 뭐….”
20대 중반에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강의를 듣고 원효와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겨우’ 원효의 책 두 권을 역주해 낸 서울교대 은정희교수(도덕교육과·61). 이번에 낸 책은 ‘금강삼매경론’ 역주본(일지사).
◇결혼도 않고 40년 번역
“어릴 때 책을 읽다가 문득 ‘죽음’이란 걸 생각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죽음에 임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 훌륭한 사람’이란 거였지요.”
어릴 때 생각이 이랬으니 부친의 뜻에 따라 입학했던 법대생 시절도 순탄할 수 없었다. 결국 졸업 후 전공을 바꿔 불교 공부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젊은 시절 이 총명한 불교학도를 출가시키려 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계종 종정이었던 고 성철스님, 석남사 주지였던 고 인홍스님 등 ‘유혹’의 손길을 보낸 분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은교수의 뜻은 학문에 있었다.
“수행하기 전에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싶었지요.”
불교학자를 천직으로 택한 은교수다운 태도지만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깨달음인 이상 수행을 도외시할 수만은 없다.
“번역을 하겠다고 공부를 잔뜩 벌려놨으니 언제 수행을 하겠어요. 하지만 조용동시(照用同時·본성을 비춤과 본성의 작용을 동시에 한다)하며 살려고 노력하지요.”
조용동시, 즉 참선과 공부는 별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따로 수행할 시간은 없지만 “‘매 순간 깨어 있는 삶’이야말로 진짜 선(禪)이 아니겠느냐”고 은교수는 되묻는다. 이것은 바로 중생 속에서 진리를 추구했던 원효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오랜 불교의 역사에도 불교 연구의 성과가 제대로 축적되지 못한 한국 현실에서 원전을 꼼꼼히 역주하는 일은 학문적 역량 이전에 보통 용기나 끈기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좋은 선생님들 아래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불교한문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불교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분도 별로 없었지요. 하지만 원전 이해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셨던 민족문화추진회의 조규철선생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방법이야 별 다른 게 있나요. 여러 사람들과 반복해 강독하면서 모르는 것을 깨닫고 계속 수정을 해 나가는 거지요.”
◇'이장의' 끝내면 마무리
그는 1991년 고전국역사상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히는 ‘대승기신론소·별기(大乘起信論疏·別記)’ 역주본(일지사)을 냈었다. 작업 중인 ‘이장의(二障義)’ 역주까지 끝나면 원효의 주요저작에 대한 은교수의 역주는 일단 마무리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은교수의 집에는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은교수는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론’의 역주를 이미 마쳤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강독을 반복하고 있다. 다른 학자나 제자들과 함께 하는 ‘구사론(俱舍論)’ ‘조론(肇論)’ ‘예기(禮記)’ 등의 강독도 일과 중 하나다.
가정부를 두고서도 어린 딸이 설거지를 다 할 때까지 등교를 못하게 하셨다는 은교수의 ‘호랑이’ 어머니(87)께서는 아래층에서 기자를 위해 정갈한 점심상을 차려 놓으시고는 대접할 반찬이 없다며 걱정이 태산이셨다.
부주열반(不住涅槃)!
열반에 머물지 않고 중생과 함께 한다는 원효의 가르침이 이 집에서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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