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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세상스크린]한계단 한계단씩…

입력 | 2000-11-06 18:37:00


1985년 영화배우로 데뷔한 뒤 촬영장에 갈 때마다 괴로운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의상가방이 무려 5개가 넘었기 때문입니다. 가방 2개는 양쪽 어깨에, 2개는 양손에, 나머지 하나는 목에 걸친 채 전철을 타고 촬영장에 가는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집이 경기도 과천이었기 때문에 서울로 촬영갈 때마다 매번 택시를 타기엔 돈도 만만치 않았고, 일부 택시는 짐이 많은 저를 보고 승차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보기 딱했는지 저를 데뷔시켜주신 이황림 감독께서 본인이 타고 다니던 1978년형 회색 포니1을 주셨습니다. 워낙 고물차여서 어떨 땐 문이 열리지않아 운전석 창문으로 빠져 나와야 했고, 100Km이상 달리면 히터가 바깥의 찬 공기와 섞여 에어컨으로 변했고, 소음 때문에 거의 소리를 질러야 차 내에서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 중고차 몰면서 행복했을때

한 마디로 폐차 직전이었지만 제겐 움직이는 궁전이었습니다. 의상을 차에 싣고 다닐수 있고, 구겨지면 안되는 옷은 뒷좌석 손잡이에 걸어 놓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년정도 그 차와 생활하다 선친으로부터 그 당시 3년 정도 된 스텔라 승용차를 물려 받았습니다. 히터를 켜면 히터가 나왔고, 에어컨을 켜면 에어컨이 나왔습니다. 차 안에선 대화가 가능했고, 운전석 문을 열쇠로 잠그면 ‘스윽’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나머지 문들도 자동으로 잠겼습니다. 천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 몇해 뒤 영화와 광고 수입이 좀 생겨서 1800CC 소나타 승용차를 사게 됐습니다. 차가 너무 조용해 시동이 안 걸린 줄 알고 열쇠를 또 돌려 차에 무리를 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 후 수입이 더 생겨 1992년부터 뉴그랜져 승용차를 6년간 몰고 다녔습니다.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만족하고 있는데 일부에서 저를 ‘짠돌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돈을 버는 녀석이 뉴그랜져를 몰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야 연예계에서 조금만 인기를 얻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고급외제차를 몰고 다니던 때이니 좀 의외이긴 했을 겁니다.

◆ 급상승 뒤엔 추락의 허무

지금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꽤 고급차를 타지만, 막 시작한 후배들이 ‘스타는 화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세워 무리를 해서라도 최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저 차를 평생 유지할수 있을까?” “저 다음은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동차는 밑으로 내려가면 몹시 우울해진다고 합니다. 비단 자동차 뿐만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섣부르고 무리하게 욕망을 채우고 그것이 없어진 뒤 지독히도 괴로워하고 허무해 합니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100층까지 몇십초만에 올라가겠지만, 내려올때도 몇십초만에 내려옵니다.

그러나 계단으로 100층까지 올라가면 오래는 걸려도 내려올 땐 이미 튼튼해진 다리로 천천히 내려오게 됩니다. 연예계에서 16년을 생활하다보니 성급한 ‘혜성’같은 스타들의 뒷모습을 꽤 많이 보게 됩니다.

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