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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담론]새로운 글쓰기 파괴적 글쓰기

입력 | 2000-11-06 18:37:00


엄숙 단아한 고전의 주석이나 합리성으로 무장한 논문부터 인터넷 채팅의 자유발랄한 언어까지 온갖 종류의 문체가 공존하는 시대다. 몇 해 전 지식인들의 논문중심주의와 원전중심주의, 삶의 현장을 떠난 허위의식과 자생력의 결핍 등을 비판했던 글쓰기 논란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논란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로 글쓰기의 지평은 끝을 모르고 확장 중이다.

책임 소재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인터넷 채팅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글들은 일단 열외로 놓고 오프라인 매체만 본다 해도 이 시대 글쓰기의 다채로움은 유감 없이 드러난다. 문자는 더 이상 의미 파악을 위해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지 않는다. 다양한 재질과 색깔의 종이, 사진 그림 만화와 온갖 시각적 기호들. 문자 역시 갖가지 빛과 그림자 중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새 잡지선 문자도 이미지

10∼20대의 잡지에서는 그 성격에 따라 언어사용법이 달라진다. 개그 매거진 ‘Gamja’나 유쾌 매거진 ‘끼’의 경박단소한 언어가 있는가 하면, 전투적 대중문화비평지를 표방한 ‘문화건달 짬’의 고답적이면서도 도전적인 문체나 인터뷰 매거진 ‘NaNA’의 거의 완벽한 언문일치 잡담체도 있다. 온갖 짬뽕이 상대적으로 단정한 고전적 문체 속에 뭉개진 ‘blank’의 비빔밥체, 이것저것을 지지고 볶아 사방으로 개성이 튀기는 ‘PAPER’나 ‘lunch box’의 철판복음밥체가 있는가 하면, 얼터너티브 뮤직 매거진 ‘beat’ 같은 중얼중얼 설법체도 있다.

문이재도(文以載道·글은 진리를 싣는 수레와 같다). 11세기 북송의 유학자인 주돈이(周敦?)가 유학의 문장론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논점은 조금 다르지만 198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이지리아 출신의 월레 소잉카교수(미국 에모리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문학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용되는 가장 친숙한 운송수단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는 의미 전달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해 온 모양이다.

◇글이 진리를 절단낼수도

그러나 이제는 정보 저장 및 전달의 효율성을 놓고 다양한 표현 방식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매체의 하드웨어적 성질과 그 기술수준에 가장 적합한 표현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상상력과 논리적 추리력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은 ‘아쉽지만’ 설득력을 잃어간다. 웹과 그래픽을 쉽게 다루게 된 세대는 점차 더 넓은 영역에서 언어의 매개 없이 시각적 이미지로 인식과 사고와 표현이 가능해진다. 물론 현재의 기술발달 단계에서는 문자가 가장 값싸고 편리한 정보전달 도구지만 그 기득권을 보장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정보 저장 전달 수단이 될 휴대용 e―book이나 PDA의 작은 화면은 급격한 문체의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

문이재도(文以裁道). 매체의 재질과 기술수준에 가장 효율적인 표현 방법을 찾아가면서도 고전적 문법만 고집할 경우 ‘글이 진리를 재단’하거나 또는 ‘글이 진리를 절단’낼 수도 있다. 인도에서 부정의 논리를 도입하고 중국 도가(道家)의 언어를 차용해 불교의 진리를 전파하려 했던 약 1600년 전의 중국인 승려 승조(僧肇)나 기존 언어 질서의 틈새를 비집고 다니며 진리 아닌 진리를 읽어내려 하는 프랑스의 해체주의자 자크 데리다는 바로 당대의 글(文) 속에 매몰되는 진리(道)를 구해내려 한 것이다.

‘밀레니엄 담론’의 문체? 그것은 권위지의 위상에 걸맞게 지적이고 고상하며 품격을 유지하되 매체의 성격과 기술수준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약간 앞서서.

(얼굴 빨개짐) 후다닥∼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