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의 역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물의 흐름을 바꿔 수자원을 확보하고 전력을 생산, 산업을 발전시키고 척박한 땅에 물을 공급해 농작물이 자라게 한다.
반면 댐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함으로써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심각한 문제점을 함께 안고 있다. 지금껏 인간은 생태계 파괴 문제는 도외시하고 댐의 효용성을 우선시해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세계 최대의 수자원 발전 시스템이 들어서 있는 미국 북서부의 컬럼비아강 유역. 크고 작은 80여개의 댐 및 그에 따른 산업화로 인해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연어가 멸종될 위기에 처하면서 컬럼비아강을 살리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컬럼비아강 살리기의 핵심은 연어의 이동을 가로막는 댐을 허물어 물길을 터주자는 것.
댐 파괴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곳은 워싱턴주와 오레곤주 아이다호주의 경계 지점에 있는 파스코를 기점으로 아이다호주 쪽으로 흐르는 스네이크 강의 4개 댐(아이스 하버, 로워 모뉴멘탈, 리틀 구스, 로워 그라나이트). 알을 낳기 위해 회귀하는 연어의 98%가 이 댐을 힘겹게 넘어 산란장으로 이동한다.
이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로워 모뉴멘탈 댐(높이 30m 길이 345m)을 방문했다. 마치 사막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 황량한 댐 위쪽에서 10여명의 인디언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태학자 제니퍼 앤씨(여)의 안내로 댐 주변을 둘러보니 콘크리트로 지어진 ‘어도(fish ladder)’가 눈에 띈다.
마침 연어의 산란기가 지나 어도(魚道)에는 한 마리의 성어만이 놀고 있었다. 하지만 8,9월에는 수천마리의 연어가 계단을 펄쩍 펄쩍 뛰어 댐 위로 오르는 모습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 든다.
연어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지만 문제는 그 정도 시설로는 연어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 또 많은 연어의 치어들이 댐에 가로막혀 바다로의 긴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댐의 파워 터빈에 걸려 죽는다. 앤씨는 “봄철 치어가 한꺼번에 내려올 때는 댐 위쪽에서 맴돌고 있는 치어를 그물로 떠 트럭으로 실어다 댐 아래쪽에 풀어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치어의 25%는 댐을 지나며 죽는다.
여기에 컬럼비아강 유역 인근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의 유입 등에 따른 생태계 파괴까지 겹쳐 최근 5년 통계를 보면 최저 0.18%, 최고 0.85%만이 회귀에 성공하고 있다. 통상 연어의 회귀율은 2∼6%. 과거 연간 1000만∼1600만 마리에 달했던 연어 어획량은 불과 250만 마리로 뚝 떨어졌다.
미국 ‘북서지역 전력계획위원회(NPPC)’는 이에따라 컬럼비아강의 생태계를 복원하고 특히 연어인공 산란장 확충, 연어 이동 장치 마련 등에 매년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수력발전 수혜자에게 세금을 부과, 재원을 마련하고 있는데 특정 지역의 자연 복원을 위한 예산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
그럼에도 대부분의 환경단체와 인디언, 어류 생태학자 및 일부 정부 관계자 등은 연어생태계를 복원하려면 댐을 허무는 길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도 동조하고 있다.
물론 댐 파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주립대 짐 앤더슨교수는 “댐이 연어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도, 치어 이동 시스템 확충을 통해 상당히 개선됐으며 연어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보다 중요한 원인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 정부는 당초 댐을 허물기 위한 결정을 올 6월 내릴 예정이었으나 일단 결정을 미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4개의 댐이 ‘생사의 기로’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앞서 NPPC는 컬럼비아강 유역에서는 아주 작은 댐도 새로 세울 수 없도록 했다.
포틀랜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환경단체 ‘컬럼비아강 지킴이(Columbia River Keeper)’의 집행위원 스티브 화이트씨는 “연어는 컬럼비아강 유역의 생태계가 살아나느냐 죽느냐의 지표”라며 “연어를 살리기 위해 댐을 부순다면 그것은 정복의 대상이었던 자연에 대해 인간이 조금이나마 반성하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美북서부 '젖줄' 컬럼비아 강▼
미국 컬럼비아강. 캐나디언 록키에서 발원해 태평양 연안까지 1920㎞를 휘감아 도는 미국 북서부 지역의 ‘젖줄’이다.
이 강을 니치와나(큰 강이라는 뜻)라 부르는 5만여명의 인디언들은 1850년대까지 주로 연어를 잡아 먹으며 나름대로의 행복한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에 의해 1880년대 후반부터 이 강 곳곳에 광범위한 준설공사와 제방쌓기, 관개용 및 수력발전용 댐 건설이 시작됐다. 특히 1930년에서 1970년대초까지 그랜드 쿨리, 보네빌 등 19개의 대형 댐이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1942년 완공된 그랜드 쿨리 댐의 경우 길이가 1.6㎞에 달하고 콘크리트 사용량만 2400만t에 이를 만큼 거대하다. 이집트 기자에 있는 최대 크기의 피라미드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 댐은 수력발전을 통해 미국 북서부 지역에 전기를 공급, 산업을 일으키고 관개를 통해 척박한 땅을 거대한 밀밭(300만 에이커)으로 만들었다.
시애틀과 푸젯 사운드를 비롯해 포틀랜드 보이제 스포케인 등의 대도시가 들어선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다. 현재는 이 일대에 총 900만명의 인구가 거주한다.
그러나 새 주인들은 이 강을 단지 인간을 위한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했고 생태계 문제는 가볍게 생각했다. 그 결과 연어 개체수가 급감하는 등 환경 문제가 발생하면서 컬럼비아강을 살리자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yongari@donga.com
▼전문가 진단▼
국제대형댐위원회에 의하면 세계의 강은 지금 약 45,000개의 대형댐에 의하여 가로막혀 있고 이로 인해 남한의 10배에 해당하는 100만㎢가 수몰됐다.
수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농경지이거나 다양한 야생생물의 서식지인 습지와 숲이며 중요한 고고학적 문화적 유적이 있는 곳이다. 수몰로 인한 이주민의 수도 수천만명에 이르는데 이들 대부분이 토지와 일자리의 상실에 따른 수입의 감소와 주거 악화,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악화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해 강력한 댐 반대운동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으로 댐 건설 추세가 현저히 약화하고 있다. 1995년 인도 대법원은 사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중지명령을 내렸으며 미국, 유럽에서도 댐을 해체하고 강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벽골제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댐의 역사는 1960년대 섬진강 댐 건설을 시작으로 대형 다목적댐 시대가 본격화했다.
그러나 댐건설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이주민의 몰락이 확인되면서 댐건설은 점차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에 강원도 인제 내린천댐 건설 계획이 슬그머니 취소된데 이어 댐 예정지역 고시까지 되었던 동강 영월댐이 국민의 열화와 같은 보전의지에 밀려 백지화됐다. 이제 우리도 치수와 수자원 및 전력생산을 위한 수단으로서 댐이 최우선되는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댐을 짓지 않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기존 댐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통합적인 수자원 관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또 물과 에너지를 무조건 싸게 공급해주는 자원경제 시스템을 절약과 효율적 이용을 극대화하는 수요관리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댐 대신에 선택한 동강과 내린천 등의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국민들의 책임있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해당 지역에 대한 자연생태계 보전 제도의 도입과 내셔널 트러스트와 같은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서왕진(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