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앞에는 악보와 지휘자가 없다. 그래도 청중에게는 어느 유명 관현악단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세광학교(광주 서구 덕흥동) 초중고등부 학생 17명으로 구성된 세광브라스밴드. 창단 9년째를 맞았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단원이 7명이고 나머지는 시력이 아주 미미한 학생들이다.
광주지역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쌓아 이제 장애인 관련단체 행사 때마다 등장한다. 지난달에는 제21회 ‘흰 지팡이의 날’ 행사에 초청받아 최신 유행곡을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들의 빛 바랜 트럼펫과 색소폰 연주가 토해내는 선율은 여느 정상인의 브라스밴드 못지 않게 우렁차다. 악단장인 김인락군(17·고등부 2년)은 “연주가 끝난 뒤 박수소리를 들을 때면 우리도 뭔가 베풀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악보를 볼 수 없는 이들은 정상인보다 몇 배나 힘든 연습과정을 거친다.
김영원(金永元·31)지도교사가 금관 목관 타악기 등 파트별 음악을 일일이 녹음해 단원들에게 주면 단원들은 녹음 테이프를 수십번 반복해 듣고 머릿속에 악보를 익힌다. 김교사가 단원 모두 곡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 합동연주에 들어간다.
이들이 한 곡을 익히는 데는 사흘 정도 걸린다. 주로 여름과 겨울방학 때 10일간 합숙훈련을 하면서 새 곡을 연습한다.
“이들에게 가장 큰 장애는 앞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편견입니다.”
이 악단의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한 김교사는 “무거운 악기를 챙겨 이동하는 게 쉽지 않지만 우리를 부르는 곳은 어디라도 달려가 희망의 선율을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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