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한결 가깝게 느껴진 8일 오후 서울 정동 A&C홀에서 박정현을 만났다. 공개방송 연습을 하고 있던 그는 최근 발표한 3집 'Naturally'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정신없이 바쁘다.
98년 데뷔앨범 'P.S. I Love You'를 발표했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박정현은 "오랫동안 사계절이 따뜻한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살아서 그런지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춥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 세 번째 독집을 발표한 소감과 스스로 이번 앨범을 평가한다면?
- 1년이 넘게 준비한 음반이에요. 앨범 제목처럼 그 동안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자유롭게' 시도한 것이구요. 사실 전작에 비해 록이나 펑키 스타일이 가미돼 걱정했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괜찮아 기분이 좋습니다. 3집을 자평하자면 100% 만족은 못해도 85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 사실 1집 'P.S. I Love You', 2집 '편지할께요' 같은 R&B 발라드곡으로 박정현이라는 가수가 알려졌는데요. 새 앨범은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록, 펑키 등 다양한 음악을 시도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 1,2집은 신인의 입장에서 처음 음악을 알리는 수준이었고 3집이 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부터 록과 가스펠을 좋아했고 라이브 공연할 때 선보였던 록적인 느낌을 이번 음반에 담고 싶었어요.
▼ 요즘 어떤 음악을 즐겨듣나요?
- 가요로는 펑키 사운드가 멋진 '롤로코스터'의 음악을 좋아하구요. 록 그룹 '라디오 헤드'의 'Kid A' 음반을 구입해 듣고 있어요. 대학에 입학해서 포크 록 음악을 좋아했고 최근에는 펑키나 록 계열의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특정 장르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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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테크노나 힙합에 도전해볼 생각은 있나요?
- 2집에서 테크노 계열의 트립 합 음악을 시도한 적은 있고 아직도 관심은 많아요. 하지만 힙합의 경우 랩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노래 위주인 저에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자신도 없어요.
◆20년 뒤에는 가수 아니면 교수가 돼 있을 것
▼ 96년에 한국에 왔으니까 이제 5년째인데 그 동안의 생활은 어땠나요? 그리고 미국에 계신 부모님은 정현씨의 가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처음 왔을 때는 한국말을 전혀 못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이제는 밥 사먹을 때나 은행갈 때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해졌어요. 부모님은 언제나 '빨리 오라'고 말하면서도 제가 음악하는 것을 응원해 주세요.
▼ 부친이 목회자여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어려서부터 가스펠 음악을 주로 들었고 16살 때 가스펠 음반을 내기도 했어요. 비록 가요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마음만은 항상 같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최고의 가스펠 가수가 되길 바라고 계시죠.
▼ 한국에서 친구는 많이 만났는지 또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어서 친구는 별로 없어요. 재미교포인 '솔리드' 출신의 김조한씨와 가끔 연락할 정도입니다. 여가시간에는 독서나 인터넷 서핑을 즐기죠. 요즘은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잘 못하지만 음악과 영화 관련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곤 해요. 미국에서는 친구 케이크를 만들어 주려고 요리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저와 어울리는 강아지를 구하려고 애완동물 사이트를 찾아다니기도 했죠.
▼ 영화 음악을 좋아하나 봅니다.
-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수집이 제 취미예요. '브레이브 하트'의 제임스 호너를 비롯해 '탠저린 드림' '반젤리스' 존 윌리암스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번 앨범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이 등장하는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야'의 경우 편곡에 참여한 폴 벅매스터도 영화 '12 몽키스'에서 피아졸라의 곡을 새롭게 해석했던 재즈 뮤지션입니다.
▼ 원래 전공이 연극영화(미국 UCLA)였는데 최근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하기로 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 가수가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를 지원했어요. 이제 가수의 꿈을 이뤘고 먼 훗날 만약 가수를 그만뒀을 경우를 생각해서 전공을 바꾼 것입니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고 습작으로 글을 쓴 것도 있어서 저와는 어울리는 학과인 것 같아요. 일단 합격한 상태니까 3집 활동을 마치고 언제 입학할지를 생각해야죠.
요즘도 책을 읽으며 노래를 구상하곤 합니다. 아마 20년쯤 뒤에 가수가 아니라면 영문학과 교수 박정현이 돼있을 거예요(웃음).
◆ 싱어송 라이터로 박정현 만의 음악 들려주는 게 꿈
▼ 지난해 일본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타다 히카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일본 음악은 잘 모르지만 우타다 히카루가 R&B 음악으로 정상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록과 팝이 중심인 일본에서 R&B 음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진출해 영어로 자유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싶어요.
▼ 박정현만의 음악 색깔은 뭔가요?
-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R&B같기도 하고 록 같기도 하고…. 그냥 내 음악을 찾을 뿐입니다. 언젠가 '박정현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가사를 100곡이 넘게 영어로 써놨는데 한국어로 표현하기가 힘들어 아쉬움이 많아요.
▼ 끝으로 팬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 우리 가요계에 음악을 사랑하는 진짜 뮤지션들을 보면서 저도 무언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앞으로 싱어송 라이터로 거듭나고 싶어요. 내 맘대로 꾸며본 음악을 받아주시는 팬들께 진심으로 고맙구요. 계속 지켜봐 주세요.
박정현은 3년전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한결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잔잔한 미소가 늘 흘렀고 가끔 환하게 웃을 때의 보조개가 귀엽다. 기독교인인 그에게 마음에 담아둔 성경 구절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로마서 12장에 있는 글인데요. '나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더 잘하라'는 내용입니다. 세상을 베풀면서 살고 싶어요."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