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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통령의 신비' 벗기는 할리우드

입력 | 2000-11-09 19:31:00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업적과 과오를 정리하는 작업은 이제 곧 역사가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던 지난 8년 동안이 40세 이상의 백인 남성 영화배우들의 호시절이었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실제로 푸른색 정장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중년의 백인 남자배우치고 지난 8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정도 영화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영화에 대통령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빌 클린턴의 영향인지, 그리고 클린턴이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자신이 뉴요커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밝혔듯이,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클린턴의 재직기간 중에 “신비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대통령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영화는 대중들의 이러한 호기심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영화와 정치는 신비를 바탕으로 번성한다. 따라서 대형 스크린에서 묘사되는 너무나 인간적인 가상의 대통령들 역시 집단적인 공상 속의 인물들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은 진짜 대통령보다 더 온화하고 더 잘생긴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텔레비전을 통해 바라보는 편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백악관을 무대로 한 드라마 ‘웨스트 윙’의 성공은 정치가라는 직업이 변호사, 의사, 경찰관 등과 같이 1시간 짜리 주간 드라마의 리듬에 가장 잘 맞는 소재라는 점을 증명해주었다.

◇클린턴 집권기간 중 제작 쏟아져◇

대통령을 흉내내고,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삼고 싶다는 충동은 대통령을 존경하고 싶다는 생각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리고 이러한 충동은 정당이나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 따라서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진 대통령에 관한 영화들 중 대부분이 사실 정치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에어포스 원’ 같은 영화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최고 권력자에 관한 우리의 환상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시달리고 있는 남성다움에 관한 우화였으며, 이 작품들 속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던 대통령들은 늦게나마 어려움에 맞서 역공을 가할 결심을 한다. 이들 영화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빌 풀먼과 해리슨 포드는 ‘영화배우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을 연기했다. 어쩌면 이것은 존 웨인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스타일로 악당들과 맞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레이건 시대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복잡하면서도 때로는 모순적인 직업이다.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어야 하고, 관료들의 우두머리여야 하며, 정당의 총수 역할도 해야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사로서의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대통령은 결단력이 있어야 하지만 무모해서는 안 되고, 원칙을 지키되 너무 점잔을 빼도 안 되며, 똑똑하되 너무 똑똑해서도 안 되고, 잘생긴 얼굴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또 너무 잘생겨서도 안 된다. 따라서 최근 제작된 영화에 등장했던 대통령들이 악당, 성자, 액션 영웅, 평범한 인물 등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http://www.nytimes.com/2000/11/06/arts/06NOTE.html)